2009년 12월25일
그가 살아나셨다(8)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16:5)
어제 묵상에서 천사는 바로 고대인들의 하나님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험은 확실한 겁니다. 확실하지만 직접적일 수 없는 하나님 경험을 고대인들은 천사를 매개로 설명했습니다.
위의 설명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태초에서 종말에 이르는 전체 역사를 통해서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지금 여기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다만 그분은 우리를 찾아오십시오. 그걸 우리는 계시라고 말합니다. 그 계시가 곧 하나님입니다. 신학적으로 그것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드러남이지 다른 어떤 것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경험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일단 접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견할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존재유비(analogia entis)가 불가능하다는 칼 바르트의 말은 옳습니다. 본문에 천사는 바로 그런 사태를 문학적 수사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천상적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큰 충격으로 몰아갑니다. 위 구절에서 여성 제자들도 천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모든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 또는 어떤 힘에 사로잡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천사를 경험할까요? 이는 곧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는가라는 질문과 똑같습니다. 각자 다르겠지만, 그 결과에서 나타나는 공통되는 현상은 생명의 깊이로 인한 놀라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경험은 놀라움입니다.
놀람은 생명 앞에서의 (아득한) 현기증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대체 알수도 없고, 알아 지지도 않았던, 생명의 세계, 그 세계가 보였을때,
'놀람'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놀람'이겠지요.
새로운 세계와의 충돌!!
아마 그 자리에 남자제자들이 있었다면, 덜 놀랬을까요?
남자들은 씩씩하니까요^^
아마, 생명을 보는 눈은 남녀노소 구분이 전혀 없겠지요.
다만, 부활의 실재, 실체 앞에서 그 누가 자지러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거대한 자연물 앞에서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천사가 누군지 참 궁금했었습니다.
"놀람"의 또다른 표현법이군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참 멋진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