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5)

조회 수 1015 추천 수 0 2019.09.07 21:33:57

거듭남과 산 희망

본문에는 찬송의 내용이 이어진다.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살아있는 희망을 알게 하셨다. 신약성경과 사도신경에서 예수의 부활을 말할 때는 늘 죽은 자 가운데서를 붙인다. 부활은 당연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니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문구는 필요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 ‘죽은 자 가운데서는 초기 기독교에서 벌어진 이단 논쟁의 결과물이다. 당시 기독교에서 가장 큰 이단은 영지주의 계통의 가현설(doceism)이다. 가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을 극대화하고 인성을 부정한다. 그들은 나름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예수는 본래부터 신이었기에 세상에서도 신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신에게는 인간적인 육체가 필요 없기에 예수에게 나타난 인간 형상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다. 말 그대로 가현(假現)이다. 신에게는 죽음이 없으니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진짜가 아니다. 신에게는 인간이 육체에서 느끼는 고통이 있을 수 없으니 십자가에서 예수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 기독교는 가현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단 논쟁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가끔 이단 논쟁이 정략적으로, 교권 쟁탈의 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진리 투쟁이다. 가현설을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기독교는 본질을 잃었을 것이다. 교부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가짜로 죽은 게 아니라 실제로 죽었다는 의미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를 신앙고백에 넣었다. 예수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왔다는 진술도 사실은 예수의 인성에 대한 강조다. 예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다른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마리아의 자궁에서 열 달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교부들은 예수의 인성을 조금이라도 약화하려는 시도를 배척했다.

예수의 인성이 기독교 신앙에서 왜 중요한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기독교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예수가 참된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인간의 모든 삶을 실제로 경험해야만 한다. 온전히 신성만으로 존재하고 겉모습은 가짜로 나타난 존재라면 그의 십자가는 무의미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생애 중에는 예수의 신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이미 태초에 로고스로 존재했기에 공생애에도 역시 신성이 유지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걸 말하려고 여러 초자연적 기적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신성은 전지전능, 무소불위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신성은 아니다. 은폐로서의 신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 문제는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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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베드로전서 강해(17) [4]

  • 2019-09-25
  • 조회 수 1169

1장 13-21 성화의 길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너희가 알거니와...

베드로전서 강해(16)

  • 2019-09-24
  • 조회 수 1232

성령과 복음 베드로전서 기자는 복음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강조하는 중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깊이 연구하고 기대했던 내용이 바로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전해진 복음이다. 12절에서는 천사들도 보기 원했던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존재인데, 그들도 복음은 알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영혼 구원은 천기누설처럼 하나님에 의해서만 준비되고 실행된 사건이니 ‘계시’로만 알려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문은 복음 전파를 성령의 일이라고 말한다. “성령을 ...

베드로전서 강해(15)

  • 2019-09-23
  • 조회 수 954

예수의 고난과 영광 11절이 말하는 고난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훨씬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알았다기보다는 그들의 메시아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는 뜻으로 보는 게 옳다. 여기서 영광은 부활이면서 동시에 승천이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또는 생명의 절정이기에 하나님에게만 붙일 수 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는 표현이 이를 가리킨다. 바울은 고후 4:6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주간일지 9월22일

  • 2019-09-22
  • 조회 수 1044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9월22일, 창조절 4주 1) 불의의 재물- 오늘 설교 본문에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 16:9)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물론 진리가 늘 상식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상식을 파괴하지도 않습니다. 불의라는 단어는 세속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 단어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세속으로 번역해야 맞습니다. 위 표현은 “세속적인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재물과 더불어서 살아야 하는데, 그 재물을 영원한 생명을 ...

베드로전서 강해(14)

  • 2019-09-21
  • 조회 수 834

선지자들의 전통 이 구원은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말한 것이다. ‘선지자들’은 좁은 의미에서 후기 선지자들, 즉 3명의 대(大)선지자와 12 소(小)선지자들을 가리키지만 크게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참고로 구약성경의 구조를 간략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모세오경-창, 출, 레, 민, 신/ 전기 선지서(이스라엘의 실제 역사)- 여호수아로부터 열왕기하까지/ 후기 선지서- 대선지서와 12소 선지서인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 성문서- 나머지 성경. 후기 선지자들을 문서 선지자들이라고도 한다.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강해(13)

  • 2019-09-20
  • 조회 수 852

영적인 삶 ‘영혼 구원’은 오늘의 삶을 영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영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혼 구원이 없다. 영적인 삶이 무엇이냐가 영혼 구원에서 핵심이다. 이미 앞에서 영육 이원론의 관점은 기독교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영적인 삶은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삶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바꾸면 성령 충만이다. 성령과 영은 같은 의미이다.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이고 헬라어로 프뉴마다. 이 고대 언어는 영이라는 의미로도 번역이 되고 바람이나 숨이라는 의미로도 번역이 된다. 고대인...

베드로전서 강해(0) [2]

  • 2019-09-19
  • 조회 수 1029

베드로전서를 읽는다! -순례자 영성과 기독교 신앙- 이번 사경회의 주제는 “베드로전서를 읽는다!”(부제: 순례자 영성과 기독교 신앙)이다. 베드로전서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년 전에 초창기 기독교의 문서다. 2천 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인류의 문명의 긴 역사, 더 나아가서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짧지만, 개별 인간의 인생에 비하여 아득한 세월이다.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지만 베드로전서는 그런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신앙의 원천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베드로전...

베드로전서 강해(12)

  • 2019-09-18
  • 조회 수 876

영혼 구원을 영육 이원론의 관점에서 보면 곤란하다. 육체는 늙고 썩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초기 기독교에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영혼 불멸설이다. 오늘 기독교인들도 대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장례식 설교에서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인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고린도교회 신자 중의 일부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고전 15:12)라고 주장했다. 영혼 불멸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부활은 없다. 죽지 않았으니 부활도 없는 셈이다...

베드로전서 강해(11)

  • 2019-09-17
  • 조회 수 1166

영혼 구원 앞에서 하나님의 칭찬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절대적인 세계에서 일어날 사건이기에 인간 언어로는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마 24, 25장이 이를 비유로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칭찬을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바꾸면 영혼 구원이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9절). 믿음의 목표가 영원 구원이라는 뜻이다. 그냥 구원이라고 해도 좋은데 여기서는 굳이 ‘영혼 구원’이라고 표현했다. 큰 차이는 없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본래 영혼 구...

주간일지 9월15일 file

  • 2019-09-16
  • 조회 수 1301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9월15일, 창조절 3주 1) 괴수- 죄인의 괴수라는 바울의 표현이(딤전 1:15) 아주 과격합니다. 이런 정도의 통찰력이 있으면 겁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 말은 이미 자신은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좋으니 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번 설교는 다른 이들이 아니라 저에게 은혜로웠습니다. 2) 출석률- 제가 보기에 우리 교회 신자들의 주일예배 출석률은 높은 편입니다. 대다수 교인이 아...

베드로전서 강해(10) [3]

  • 2019-09-14
  • 조회 수 1193

신앙의 기쁨 베드로 사도는 가장 기초적인 기독교 신앙을 설명한 뒤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6절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라는 접속 부사가 이를 의미한다. 독자들은 지금 시련을 겪는 중이다.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6b절에서 ‘기뻐하라.’라고 말한다. 8b절에도 이를 반복했다. 기쁨은 신앙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기쁜 일들을 찾는다.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출세하는 일들이 기쁨의 이유다. 문제는 그 모든 기쁨의 이유가 될만한 일들은 두 가지 속성으로 인해서 참된 기쁨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하나는 기...

베드로전서 강해(9)

  • 2019-09-13
  • 조회 수 838

하나님의 보호하심 살아있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의 두 번째 이유는 5절이 가리키고 있듯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다.”라는 데에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보호하시는가? 비행기나 배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기독교인들만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간혹 그런 선정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말은 어려움에 대처할 능력을 하나님이 믿는 이들에게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귀...

베드로전서 강해(8)

  • 2019-09-12
  • 조회 수 952

하나님의 유업 살아있는 희망의 구체적인 내용이 4절과 5절에 각각 나온다. 4절은 유업이고, 5절은 보호하심이다. 먼저 유업을 보자. 공동번역은 유업을 분깃이라 표현했고, 루터 성경은 유산(Erbe)이라고 표현했다. 물려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유업의 속성을 셋으로 표현한다. 1) 썩지 않는다. 2) 더럽지 않다. 3) 쇠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것에 나타나는 속성과 반대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썩고 더럽고 쇠한다. 이 세 속성 중에 썩는다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

베드로전서 강해(7)

  • 2019-09-11
  • 조회 수 1137

1) 하나님 나라는 종말에 완성되겠지만 지금 여기에 선취의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도로 설명하면 하나님 나라는 ‘아직 아님’(not yet)이면서 동시에 ‘이미’(already)의 변증법적 관계로 우리에게 임한다. 예를 들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외쳤던 정의(justice)를 보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투쟁하고 참았다. 옛날보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워진 건 분명하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정의롭지 못하다.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때 완전한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아...

베드로전서 강해(6)

  • 2019-09-10
  • 조회 수 1144

예수의 부활이 거듭남의 근거인 이유는 무엇인가? ‘거듭나게 하신다.’라는 표현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표현이다. 전자는 중생(重生, regeneration)으로, 후자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로 불린다. 벧전 1:23절에도 ‘너희가 거듭난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거듭남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신약성경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나온다. 요 3:1절 이하를 따르면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밤에 예수를 찾아와 대화를 나눈다. 예수는 그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

주간일지 9월8일 file [5]

  • 2019-09-09
  • 조회 수 2168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9월8일, 창조절 2주 1)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이사야와 에스겔과 더불어서 대(大) 선지자로 불립니다. 위대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전승된 말씀의 양이 다른 소(小) 선지자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입니다. 무려 52장입니다. 이사야는 66장, 에스겔은 48장입니다. 다른 소 선지자들의 글은 대개 10장 내외입니다. 예레미야의 생애는 불운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한 탄식이 넘쳐나는 <애가>가 예레미야의 이름으로 전승되...

베드로전서 강해(5)

  • 2019-09-07
  • 조회 수 1015

거듭남과 산 희망 본문에는 찬송의 내용이 이어진다.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살아있는 희망을 알게 하셨다. 신약성경과 사도신경에서 예수의 부활을 말할 때는 늘 ‘죽은 자 가운데서’를 붙인다. 부활은 당연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니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문구는 필요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 ‘죽은 자 가운데서’는 초기 기독교에서 벌어진 이단 논쟁의 결과물이다. 당시 기독교에서 가장 큰 이단은 영지주의 계통의 가현설(doceism)이다. 가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을 극대화하고...

베드로전서 강해(4)

  • 2019-09-06
  • 조회 수 1074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느끼는 사람은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찬송은 일종의 제사 행위다. 제사는 절대자에게 자신을 바치는 의식이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런 종교의식에 참여한다. 주일 공동예배가 그것이다.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에게 두 가지 영적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하나님을 절대자로 경험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그에게 바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절대자로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자신을 그...

베드로전서 강해(3) [2]

  • 2019-09-05
  • 조회 수 1513

1장 3-12 하나님 찬송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배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

베드로전서 강해(2) [2]

  • 2019-09-04
  • 조회 수 1346

벧전 1:1절에 열거된 지명은 주로 지금의 터키 지역에 속한다. 그곳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흩어진 이들은 디아스포라다. 베드로전서 기자는 기독교인의 삶을 기본적으로 나그네라고 규정한다. 흔한 표현이기는 하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도 있다. 나그네 개념을 전문 용어로 바꾸면 구도자다. 구도자는 도(道)를 찾는 사람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또는 하나님 나라를 찾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여기에 온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돌아서는 사람이다. 돌아서는 삶을 회심(메타...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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