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11월10일(창조절 11주)

조회 수 1282 추천 수 0 2019.11.11 21:41:27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1110, 창조절 11

 

1) 관념과 실재- 학개 1:15-2:9절을 본문으로 하는 이번 설교 두려워하지 말라!”의 한 대목에서 삶의 관념과 실재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짚었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높은 지위와 많은 소유는 매혹적이긴 하나 관념입니다.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도 역시 관념입니다. 그런 관념만으로는 삶을 풍성하게 누릴 수가 없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숨을 쉬고, 향기를 맡으며, 실제의 사람을 대하고,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삶의 가장 깊은 토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 경험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런 하나님 경험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2) 성가대- 요즘 추수감사절(1118) 찬양을 위해서 성가대가 맹연습 중입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원들은 억지로 떠밀려서 참여하는 분들이 아닙니다. 스스로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아닙니다.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분들도 아닙니다. 그냥 함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성가대의 찬양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이번 추수감사절 찬양이 기대됩니다. “감사하라!”

 

3) 서울 샘터교회- 이번 주일도 둘째 주일이라 정 목사는 서울 샘터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처음 얼굴을 뵙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대구 성서아카데미 사이트에 이미 10년 전에 들어와서 여러 글을 읽었다고 하시네요. 몇몇 청년들은 오늘 빠졌습니다. 청년들이 꾸준하게 교회에 참석하기를 정말 어려울 겁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가기에 한번 못 보면 얼굴 기억하기도 힘듭니다. 전주에 사는 어느 다비안이 서울 샘터교회 교우들에게 깨로 만든 한과를 보내줘서 예배 후 간식 시간에 함께 먹었습니다. 정말 고소하네요. 고맙습니다. 몇몇 교우들과 저녁을 먹은 뒤에 식당을 나오자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는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케이티엑스 차창에 비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그 어떤 타악기 연주보다 더 멋스러웠습니다. 북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가을비가 이어졌는데,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4) 가을 공연- *녀 권사가 참여하는 오카리나 합주단 가을 공연이 오는 화요일(1112) 저녁 730분에 대구 범어성당 연주홀에서 열립니다. 오카리나 연주만이 아니라 성악과 다른 악기 연주도 나온다고 합니다. 깊은 가을밤 멋진 음악회가 되겠군요. 오는 교우들에게 저녁 식사도 대접하겠다고 하시네요. 외조하는 류 장로가 주빈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니 많이 오십시오. 저도 일찌감치 나서서 그쪽의 깊은 가을은 어떤 풍경인지 인근을 둘러봐야겠습니다. 교우들의 멋진 친교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5) 서진이- 예배 후 동대구역으로 가려고 지하 예배당에서 층계를 올라가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걸어가던 류*규 집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난 주일에 설교를 들은 서진이가 뭔가 깨달은 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붙여보니 강한 느낌을 받은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일학교 어린이 설교할 때마다 눈높이를 맞춰서 설교하지 못하여 찜찜하게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서진이에게도 들렸다니, 저에게 얼마나 격려가 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걸음 앞서가던 서진이에게 제가 서진아, 정말 괜찮았니?” 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더군요. 이제 됐습니다. 제가 자신감 느끼고 어린이 설교를 해도 되겠습니다. 그날 설교는 삭개오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는 누가 잃어버린 자인가?”였습니다.

 

6) 밴쿠버- 오늘 낯선 손님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은 제가 이미 알고 있긴 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교포이십니다. 한 열흘 정도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고국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이 대구 샘터교회 예배 참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덕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대구 샘터교회 예배를 갈망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은 대구 샘터교회에 속한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예배 후에 1층 카페에서 잠시 대화하다가 저는 서울로 올라갔고, 나중에 전해 들으니 그 뒤로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제 아내를 포함하여 몇몇 권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남은 일정을 잘 보내시고 밴쿠버로 잘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7) 늦둥이- 오늘 예배 후에 아무개 집사가 저에게 슬쩍 다가오더니 이런 말을 합니다. “아직 목사님께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한데, 제 아내가 지금 만삭 중입니다. 큰아이가 혼자라서 외로울 거 같아서 둘째를 가졌습니다. 내년 1월이 출산 예정입니다.” 정말 서프라이즈이네요.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아니 제가 아는 이들 중에서도 신기록을 깰만한 늦둥이입니다. 이분이 누굴까요? 한 가지 힌트를 드린다면, 제가 주례를 선 부부입니다.

 

8) 수능 고사- 이번 목요일(1114)에 자녀들이 수능을 볼 가정이 둘입니다. 주보에 모쪼록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랍니다.”라고 썼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를 위하여 공적으로 기도회를 열지는 않으나 담임 목사로서 수능 볼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9) 예배 참석인원: 81, 헌금: 1,130,000


[레벨:16]맑은그늘

2019.11.21 03:48:39

"비밀글입니다."

: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9.11.21 20:08:10

앗, 깜빡했네요. 그렇게 맛있는 깨강정은 처음입니다. 

지난달 여수에 가는 길에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익산을 통과했고,

12월에도 한번 더 통과할 계획입니다. 

맑은그늘 님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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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05) 요 9:35 네가 인자를 믿느냐. 9:8-34에는 예수의 어록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의 긴 어록 중심으로 전개되는 요한복음에 잘 나타나지 않는 대목이다. 눈이 밝아진 이 사람과 이런 일이 일어난 날이 하필 안식일이었다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과 이 사람의 부모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다. 이 대목에서 요한복음이 기록된 당시에 예수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어땠는지를 암시하는 두 구절이 눈에 띈다. 하나는 22절이다. 바리새인들의 닦달을 받은 부모가 아들에게 대답을 미룰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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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03)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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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03)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이런 말을 우리는 입에 달고 살지만 이게 실제로 무슨 뜻인지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호로만 우리에게 승하고 신앙의 능력으로는 쇠하기 때문이다. 와 닿지 않는데 어쩌랴. 평소 신앙생활의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허투루 대했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도대체 예수는 왜 세상의 빛인가? 그가 빛이라면 우리는 왜 여전히 어두움에 들어간 사람처럼 사는가? 이런 질문은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한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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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00) 요 8:5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는 유대인들의 비판 앞에서 더 파격적으로 발언한다.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말이다. 유대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59절에 따르면 그들은 유대 종교 형벌인 돌로 예수를 치려고 했다. 예수는 그 자리를 피했다. 사람이 피할 때는 피하는 게 좋다. 떳떳하다고 맞서다가는 의미 없는 피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말도 신학적인 수사이지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다. 이런 발...

예수 어록(199)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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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199)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예수를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56절 말씀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자아낼만한 발언이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서 토지와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사실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아브라함은 중요한 인물이다. 마태복음 기자는 첫 구절을 ...

예수 어록(198) 요 8:55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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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198) 요 8: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와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했다. 하나님을 알기에 그의 말씀을 지킨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거꾸로 지금 예수와 논쟁을 벌이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속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 예수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

예수 어록(197) 요 8:54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 2019-11-20
  • 조회 수 804

예수 어록(197) 요 8:54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에게 영광을 돌렸다는 의미의 진술이 54절로 이어진다. 영광을 돌렸다는 말은 하나님이 예수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뜻이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치료되는 수준의 생명이 아니라 종말에 완성될 부활 생명이다. 종말에 완성된다는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한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만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종말...

예수 어록(196) 요 8:51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 2019-11-19
  • 조회 수 1283

예수 어록(196) 요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는 51절에서 매우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가 이 문장 그대로 직접 발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로 발언했을 수는 있다. “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 유대인 조상을 애굽에서 벗어나서 가나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셨으며,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

예수 어록(195) 요 8: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 2019-11-18
  • 조회 수 1117

예수 어록(195) 요 8: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언가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숨기지만 실제로는 늘 무언가를 의도한다. 그 의도의 중심에는 자기 영광이 자리한다. 자기가 높아지려는 욕망이 그것이다. 자기주장이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못 견디는 이유는 자기 영광을 구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자기 영광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 영광이 인간의 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기 영광에 ...

주간일지 11월17일 추수감사절

  • 2019-11-17
  • 조회 수 1294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1월 17일, 창조절 12주 1) 묵시적 종말- 오늘 설교 시간에 제가 잘난척 했습니다. 평생 설교자로 살았으니 대충 매너리즘에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도 설교가 점점 더 맛깔나게 선포된다고 말입니다. 우리 교우들은 제가 잘난척 하는 게 아니라 설교자 스스로 말씀에 감동한 걸 저렇게 표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이번 설교의 키워드는 ‘묵시적 종말’이었습니다. 묵시적 종말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실존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지진, 기근, 전염병은 우리의 현재이면서 미...

예수 어록(194) 요 8:49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 2019-11-16
  • 조회 수 1099

예수 어록(194) 요 8:49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유대인들은 48절에서 예수를 이렇게 비판한다.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은 지역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즉 예수는 유대인의 순수혈통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의 말은 사실관계가 틀렸다. 예수는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고, 다윗 가문에 속했다. 귀신 들렸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예수는 신성 모독적인 발...

예수 어록 (193)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 2019-11-15
  • 조회 수 1078

예수 어록(193)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진리 말씀은 진리에 속한 자에게 들린다. 생명은 생명에 속한 자에게 보이고 경험된다. 예수는 진리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말씀이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마음이 온통 자신에게 기울어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헛소리다. 설교도 아무에게나 들리는 게 아니다. 자기 귀에 들리는 설교, 그게 바로 자기의 영적인 수준이다. 시도 그렇다. 시에 마음의 귀를 연 사람에게나 시...

예수 어록(192) 요 8:46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 2019-11-14
  • 조회 수 1093

예수 어록(192) 요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5절에 이어서 46절에서도 예수는 진리에 기대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45절에서는 예수가 진리를 ‘말하므로’ 유대인이 예수를 믿지 않았는 표현이 나오고, 46절에서는 예수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믿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뉘앙스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진리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부를 가리킨다면 후자는 진리에 대한 유대인들의 무감각을 가리킨다. 어느 쪽이든지 결과는 같다. 사람들의 ...

예수 어록(191) 요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 2019-11-13
  • 조회 수 1264

예수 어록(191) 요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가 진리를 말하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발언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숨어있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폭로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따른다고 생각하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진리를 따르기가 몹시 어렵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오히려 진리를 거스른다고 보는 게 옳다. 진리가 실제 삶에서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실제의 삶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삶의 범주에서 불편할 것이다. 실제의 삶에서는 예수...

베드로전서 강해(53)

  • 2019-11-12
  • 조회 수 1172

평화 평강은 헬라어 에이레네의 번역이다. 눅 2:14절에서는 같은 단어가 평화로 표기되었다. 평강과 평화가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헬라어가 같다면 한쪽으로 통일시키는 게 낫다. 번역의 문제가 종종 나온다. 같은 의미의 단어를 한자로 표기하거나 순수 우리말로 표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천국과 하늘나라다. 평강이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으니 가능하면 에이레네를 평화로 번역하는 게 좋아 보인다. 헬라어 ‘엘피스’도 우리말 어법에 맞도록 희망이라고 번역하는 게 어떨는지. 나는 에이레네를 평화로 쓰겠다. 우리말 어법에 ...

주간일지 11월10일(창조절 11주) [2]

  • 2019-11-11
  • 조회 수 1282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19년 11월10일, 창조절 11주 1) 관념과 실재- 학개 1:15-2:9절을 본문으로 하는 이번 설교 “두려워하지 말라!”의 한 대목에서 삶의 관념과 실재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짚었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은 높은 지위와 많은 소유는 매혹적이긴 하나 관념입니다. 교회 성장 이데올로기도 역시 관념입니다. 그런 관념만으로는 삶을 풍성하게 누릴 수가 없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숨을 쉬고, 향기를 맡으며, 실제의 사람을 대하고,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베드로전서 강해(52)

  • 2019-11-09
  • 조회 수 783

은혜 은혜는 헬라어 카리스의 번역이다. 카리스는 grace, kindness, mercy, gift, blessing 등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다. 카리스와 비슷한 단어는 ‘카리스마’다. 카리스마의 뜻은 (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gift이다. 카리스마는 보통 은사로 번역되지만 실제로는 은혜와 어원이 같다. 카리스나 카리스마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보면 된다. 은혜에 굳게 서려면 우선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연의 차원에서 보면 그게 쉽게 눈에 들어온다. 빛과 바람과 구름과 땅은 우리가 만들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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