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조회 수 1125 추천 수 0 2020.01.13 20:28:5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112, 주현 후 1

 

1) 상한 갈대- 설교를 듣는 사람보다 설교하는 사람이 성경 본문에서 더 크게 감동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번 성경 본문이 그랬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왜 이리 오래 저의 영혼을 그 중심에서 위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결단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설교의 결론은, 너무 뻔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이 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이런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 돕는지를 신앙적인 덕담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 삶의 차원에서 알고 경험해야겠지요. 그 내용을 제가 설교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는지 모르겠군요. ,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에게 생명의 힘으로 함께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군요. 다만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의 생명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무한히 열린 시 경험이나 예술 경험에 가깝습니다.

 

2) 서울 샘터교회- 20191215일 이후 한 달 만에 다시 서울 샘터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서울 샘터교회의 운영위원 구성도 바뀌었습니다. 운영위원장이 여자 교우인 양*선 집사에서 남자 교우인 김*성 집사로 달라졌습니다. 서울 샘터교회는 처음부터 운영위원장을 일반 신자가 맡았습니다. 대구 샘터교회는 작년부터 일반 교우의 운영위원장 제도가 시작되었는데, 서울 샘터교회처럼 남녀가 교대로 운영위원장을 맡아도 좋아 보입니다. 성찬식을 함께하는 예배를 마치고 40분 가까이 설교 해설까지 한 다음에 서울 샘터교회 예배 담당 두 목사 가족, 그리고 운영위원장과 함께 중국집에서 밥 먹었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만 방문하기에 다른 주일에는 두 분 목사가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합니다. 2020년에도 함께 힘을 모아서 귀한 예배가 진행되도록 노력합니다. 저는 이제 29일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3) 교인 총회 문건- 점심을 먹는 중에 지난 주일 교인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총회 문건을 못 봤을 거니까 전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치더군요. 안내석에 보니 7-8부가 남았습니다. 세 부를 그 교우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문건을 일부러 챙긴 이유는 그걸 봐야 교회 상황을 소상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잘 보관해두면 교회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아직 몇 부가 남았으니 없는 분들은 다음 주일 교회에 와서 챙기십시오. 참고하라고 한 부를 서울 샘터교회 운영위원장에게도 전달했습니다. 총회 문건이 예쁘게 만들어졌습니다.

 

4) 반주- 우리 교회 반주자는 세 분입니다. 두 분은 피아노 전공으로 음대에서 가르치고, 한 분은 작곡 전공으로 현재 대구를 대표하는 재즈 트리오를 이끌면서 입시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주자들만 말한다면 우리 교회가 대구에서 가장 호화 멤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서 예배용 악기가 상당히 빈약합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던 전자 피아노입니다.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는 데에는 좀 더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필요합니다. 전자 피아노가 아니라 전자 오르간이 예배 반주로는 훨씬 효과적입니다. 공간울림에서 사용하던 키보드가 그래도 나을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일단 현재 악기만이라도 전체적으로 소리를 더 키우는 게 좋습니다. 소리가 예배당 전체를 꽉 채우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반주자들이 살짝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5) 교회 간판- 한 달여 뜸을 들이다가 드디어 교회 이름이 적힌 간판이 건물 현관 출입문 상층부에 설치되었습니다. 아주 소소한 일인데도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작은 일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크게 기뻐할 일도 일어나는 법입니다. 주차 마당에 들어서면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와서 좋습니다. 이제 현관 옆에 세워두었던 교회 알림 배너는 필요 없으니 창고에 집어넣어야겠습니다. 건물 안에서 간판이 달린 자리를 보니 흰 바탕만 남아 있어서 뭔가 허전해 보입니다. 거기에 성구를 새겨넣으면 좋겠다는 생이 드는군요. 의견을 모아보고, 필요 없으면 그냥 넘어갑시다.

 

6) 통합 예배- 어린이들도 함께 예배드리는 첫 주일에 저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리는 설교를 해야 하니까요. 올해부터 사회자로 활동하는 류*규 집사의 첫째 아들 서진이가 오늘 아빠와 함께 일찍 교회에 와서 친교실에 앉아있기에 목사님 설교가 너무 길지?”라고 물었습니다. 전혀 아니고, 재미있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군요. 자신 있게 어린이 설교를 계속하겠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부모들이 어린이, 학생 옆에 함께 앉아서 주보 보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이런 예배 분위기만으로도 그들에게 좋은 신앙훈련이 됩니다.

 

7) 새 신자 환영- 119일에 예정했던 새 신자 환영모임이 2월로 연기됩니다. 담당자인 권*숙 집사가 알아보니 119일에 빠지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126일은 설날 연휴니까 힘들고 해서 새 신자들이 가장 많이 참석할 수 있는 주일을 확인하여 2월 중에 실행하겠습니다.

 

8) 성가대 연습- 성가대는 그동안 매월 1, 2주에 연습했습니다. 2020년에는 운영위원 회의가 첫 주일에 개최되기에 여러모로 교회 일정이 빠듯합니다. 첫째 주일을 피할 수 있는지 대원들의 의견을 모아 달라고 제가 지휘자 류*진 집사에게 부탁하자 의논 끝이 다행스럽게도 2, 4주일로 변경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매월 첫 주일에는 13:00 운영위원 회의, 14:00 신학 공부가 열립니다.

 

9) 손님- 오늘 우리 교회를 방문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부부로 오신 두 가정과 김*슬 청년의 동생입니다. 공교롭게 모두 바쁜 일들이 있어서 저와 인사만 나누고 친교 식사 없이 돌아갔습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해주기를 기대합니다.

 

10) 예배 참석 인원: 76, 헌금: 540,000(예배 헌금 240,000, 통장 헌금 300,000)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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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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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6)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예수는 일관되게 자기의 행위, 즉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근거로 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예수의 행위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병든 사람과 장애인을 고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도 다 안다. 그 사실만으로는 예수를 비난할 수 없었기에 신성모독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들은 원래 삐딱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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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5) 요 10: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수는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말하거나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런 표현도 듣기에 따라서 신성모독으로 비치겠지만 예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두 표현 모두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유대인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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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4)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예수는 “당신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라는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35절에서 부연하여 설명한다. 그 설명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실제로 신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성에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이게 이상한 주장이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신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

예수 어록(233) 요 10:34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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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3) 요 10:34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유대인들도 예수의 행위가 선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예수의 행위가 아니라 ‘신성모독’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33절은 유대인들의 비난을 이렇게 전한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 예수는 자칭 하나님이라고 발언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세상에 실제 인간으로 나타날 수 없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는 말이 이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신적인 능력인 구원을 보이는 존재는 메시야, 또는 인...

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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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12일, 주현 후 1주 1) 상한 갈대- 설교를 듣는 사람보다 설교하는 사람이 성경 본문에서 더 크게 감동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번 성경 본문이 그랬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왜 이리 오래 저의 영혼을 그 중심에서 위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결단도 더 단단해졌습니다. 설교의 결론은, 너무 뻔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이 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걱정하지 ...

예수 어록(232) 요 10:32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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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2) 요 10:32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예수의 발언은 거기 모였던 이들을 발칵 뒤집었다. 그럴만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존엄한 존재로 여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지도 않았다. 야훼(여호와)라거나 엘로힘(하나님), 또는 아도나이(주)나 엘 샤다이(만군의 주)도 하나님을 직접 호명하는 게 아니다. 거룩하신 분, 세상을 창조하신 분,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표현만이 가능하다. 예수...

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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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31)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드디어 가장 위험한 발언이 나왔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게 예수의 실제 발언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요한복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예수가 실제 이런 자구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한 생각은 했을 것이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영혼 전체로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

예수 어록(230) 요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며

  • 2020-01-09
  • 조회 수 875

예수 어록(230) 요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만물보다 큰 아버지이다. 만물보다 큰 존재는 만물에 제한받지 않고 만물을 초월한다. 예수는 바로 그 하나님이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아버지라고 보았다. 이런 사실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눈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는 자기...

예수 어록(229)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 2020-01-08
  • 조회 수 892

예수 어록(229)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는 우리에게 ‘영생’(eternal life)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 요한복음의 핵심이다. 영원하다는 말은 단순히 시간이 끝없이(endless) 연장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영생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 무한 반복되는 삶은 공허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영원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

예수 어록(228)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 2020-01-07
  • 조회 수 1115

예수 어록(228) 요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의 양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세 가지다. 1)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 사람은 이상하다. 귀가 똑같이 멀쩡해도 자기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 유치원에 수업을 참관하러 온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소리에 민감하다. 음악에 대한 내공이 깊지 않은 사람들은 수준 높은 연주에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영적인 귀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영적인 ...

주간일지 2020년 1월5일 file [2]

  • 2020-01-06
  • 조회 수 1259

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월5일, 성탄후 2주 1) 입양- 매월 첫 주일은 설교자로서 큰 도전을 받는 주일입니다. 초등 5학년을 기준으로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초등 5학년에게 들리게 설교하려면 무조건 처음부터 ‘이야기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오늘은 입양 이야기로 시작해서 입양 이야기로 끝냈습니다. 백일 된 아이가 스웨덴으로 입양을 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품에는 아이와 엄마와 아빠 이름이 새겨진 반지와 가족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친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과 같다고 했...

예수 어록(227) 요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 2020-01-04
  • 조회 수 1056

예수 어록(227) 요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믿음을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지 않으시면 믿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은총을 위 구절은 ‘내 양’이라는 단어에 담았다. 예수와의 깊은 친밀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믿음이 은총이라면 믿음 여부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나님이 주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런 반론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1 더하기 1은 2’라는 공식만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공식은...

예수 어록(226) 요 10:25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 2020-01-02
  • 조회 수 998

예수 어록(226) 요 10:25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시각장애인을 고친 사건 이후로(요 9:1 이하) 진행된 예수의 긴 연설이 일단 요 10장 18절에서 끝난다. 연설이 끝나자 어떤 이들은 예수를 귀신 들려서 미쳤다고 비난했고, 어떤 사람은 예수를 지지했다. 예수 발언은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과격하긴 했다.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영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런 논란이 일어난 뒤에도 예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

짧은 설교문

  • 2019-12-31
  • 조회 수 7080

대구 인권위, 에큐메니컬 주관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와 인권상 시상식” 설교 2019년 12월30일 오후 6:00,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 애은성당 제목: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눅 6:20-26) 누가복음 기자는 마태복음의 “팔복”(마 5:1-12)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가난과 복의 관계를(눅 6:20-26) 전한다.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표현보다는 누가복음의 “가난한 자”라는 표현이 훨씬 강력한 표현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경 문자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오늘 본문만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척 외면한다. ...

예수 어록(225) 요 10:18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 2019-12-30
  • 조회 수 993

예수 어록(225)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초기 기독교 당시에 사람들은 다음의 한 가지 사실을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영적 권위가 있는 존재인 예수가 어떻게 세상의 권력에 의해서 죽었느냐, 하고 말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이들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당시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죽음을 실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는 신이기에 인간이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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