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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월8일 깃들 곳 [16]

  • 2007-03-08
  • 조회 수 1791

2007년 3월8일 깃들 곳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막 4:32) 신약학자들의 일부 견해에 따르면 오늘 본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비록 작은 공동체로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들었으며, 또한 모여들 것이라고 말입니다. 기독교는 지금 큰 나무와 같습니다. 유럽의 기독교가 아무리 쇄락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종교이며, 남북 아메리카도 개신교와 가톨릭...

3월7일 작은 세계 (5)

  • 2007-03-07
  • 조회 수 1622

2007년 3월7일 작은 세계 (5)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신앙인들도 자주 큰 교회, 큰 목회, 큰 비전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큰 교회에 성령이 크게 활동하고 작은 4교회에는 시원치 않게 활동한다는 생각이 작동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교회나 큰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작은 교회도 교회일 뿐이고 큰 교회도 교회일 뿐입니다. 작은 교회에 그리스도의 몸이고, 큰 교회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 건 너무 이상적인 말이 아니냐, 아...

3월6일 작은 세계 (4)

  • 2007-03-06
  • 조회 수 1715

2007년 3월6일 작은 세계 (4)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큰 사람이 되라.” 하는 덕담을 자주 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교회 교육도 역시 성공해서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기독교인이 사회의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것이 선교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설교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3월5일 작은 세계 (3) [1]

  • 2007-03-05
  • 조회 수 1350

2007년 3월5일 작은 세계 (3)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약간 나이브하게 받아들이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량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 가운데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경종이겠거니 하고 말입니다. 그런 것만이 아닙니다. 작은 세계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입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물리의 세계를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3월4일 작은 세계 (2) [1]

  • 2007-03-04
  • 조회 수 1221

2007년 3월4일 작은 세계 (2)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설교 명망가들의 설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독교 신앙과 풍요로운 삶의 일치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어야만 물질적으로도 잘 살게 된다는 사실을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암시적으로 강조합니다. 동남아 국가가 가난한 이유는 불교를 믿기 때문이고, 중동 국가들의 사회가 혼란한 것도 알라를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거 공산권 국가들이 총체적으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 역시 그들...

3월3일 작은 세계 (1) [3]

  • 2007-03-03
  • 조회 수 1416

2007년 3월3일 작은 세계 (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막 4:31)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지는 제가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시력이 별로인 사람에게는 눈에 들오지 않을 정도로 작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씨가 싹이 나서 자라면 경우에 따라서 3m 높이가 된다고 하네요. 이 비유는 작은 것에 담긴 생명의 신비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생태학자들의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런 말은 낭만적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훨씬 본질적입니다. 이 명제...

3월2일 성서의 관용어에 대해 [17]

  • 2007-03-02
  • 조회 수 2015

2007년 3월2일 성서의 관용어에 대해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막 4:30) 마가복음 4장은 비유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농사에 연관된 개념인 씨, 뿌림, 자람, 결실, 추수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의 핵심은 변화, 또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와 같다는 말입니다. 막 4:30-32절에는 “겨자씨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체 이야기가 세 구절에 불과한데 그 서론이 한 구절을 차지합...

3월1일 추수 [1]

  • 2007-03-01
  • 조회 수 1364

2007년 3월1일 추수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막 4:29) “씨 뿌림”의 비유가 가리키는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단계는 추수입니다.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이 마지막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종말이라고 부릅니다. 이 종말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을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그냥 쉽게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에 종말이 올까요?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는 것은 일단 분명해 보입니다. 지구는 앞으로 45억 정도 지탱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2월28일 땅 (5) [1]

  • 2007-02-28
  • 조회 수 1279

2007년 2월28일 땅 (5)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본문 말씀은 설교행위에 관해서도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서는 청중들과의 만남에서 스스로 청중들의 영성을 키워냅니다. 설교자는 단지 씨를 뿌릴 뿐이고 성령이 그들을 변화시킵니다. 청중들의 생명 사건에서 설교자는 무능력합니다. 이런 걸 모르는 설교자는 자신들이 신자들을 변화시킬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일이 모든 ...

2월27일 땅 (4) [7]

  • 2007-02-27
  • 조회 수 1402

2007년 2월27일 땅 (4)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본문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헬라어 ‘아우토마테’의 번역인 이 ‘스스로’는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정확하게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듯이 스스로 그의 길을 갑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엄청난 착각에 빠진 겁니다. 이는 마치 호랑이 꼬리가 호랑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과 ...

2월26일 땅 (3)

  • 2007-02-26
  • 조회 수 1322

2007년 2월26일 땅 (3)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모세의 호렙산 전승에서 알 수 있듯이 성서도 자연에 대한 매우 소중한 영성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시편에서 이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성서는 자연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생각할 뿐이지 그것 자체를 하나님으로 섬기지는 않습니다. 자연 안에 신성이 깃들어있지만(범재신론) 자연 자체...

2월25일 땅 (2) [1]

  • 2007-02-25
  • 조회 수 1219

2007년 2월25일 땅 (2)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땅만이 생명을 맺기 때문에 땅만이 거룩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보다 땅이 더 귀하지 않을는지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랫말을 저는 한편으로는 동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합니다. 이 말이 현대문명에 의해서 상대화된 사람을 다시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라면 동의하지만, 모든 생명의 중심에 인간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라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군요. 저는 땅이 바로 생명의 ...

2월24일 땅 (1) [1]

  • 2007-02-24
  • 조회 수 1454

2007년 2월24일 땅 (1)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농부가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땅이 맺습니다. 땅이 생명의 원천입니다.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앎이 추상으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오히려 많습니다. 땅과 생명의 관계가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땅의 존재론적 생명의 능력을 상실되고 재화의 도구가 되어 버렸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류시화 씨가 편역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

2월23일 씨 뿌리는 농부(3) [2]

  • 2007-02-23
  • 조회 수 1376

2007년 2월23일 씨 뿌리는 농부(3)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7) 농부는 씨가 어떻게 나서 어떻게 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씨가 썩고 싹이 나고 자라는 현상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2천 년 전의 농부야 무식하니까 그렇다 치고 오늘의 물리학자들은 그걸 알 수 있을까요? 씨와 싹과 열매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조금 더 많이 알고 있겠지만 오늘의 과학자들도 그 비밀을 풀지 못했습니다. 2천 년...

2월22일 씨 뿌리는 농부(2) [5]

  • 2007-02-22
  • 조회 수 1613

2007년 2월22일 씨 뿌리는 농부(2)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7) 농부는 다만 씨를 뿌렸을 뿐이지만 씨는 ‘나서 자라’났습니다. 어제 한번 짚었지만 우리는 이 원리를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생명의 세계를 열어간다는 엄정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의존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오히려 우리가 생산할 수 있을 것처럼 과욕을 부리게 됩니다. 일종의 도구주...

2월21일 씨 뿌리는 농부(1) [3]

  • 2007-02-21
  • 조회 수 1358

2007년 2월21일 씨 뿌리는 농부(1)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7) 이 비유에 나오는 농부는 밤낮 자고 깨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씨가 자랐습니다. 농부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가 씨를 뿌렸지만 씨가 자라는 건 그의 능력 밖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큰 착각입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더군요...

2월20일 하나님 나라와 파종 [1]

  • 2007-02-20
  • 조회 수 1294

2007년 2월20일 하나님 나라와 파종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 4:26) 막 4:1-34절에는 씨와 결실이라는 주제로 일련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21-25절에 약간 다른 가르침이 중간에 끼어들었고, 이제 다시 비유가 계속됩니다. 26-29절은 파종, 씨의 자람, 땅의 생산력, 종말의 때 등등, 매우 중요한 신학 개념들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 우리는 이 대목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군요. 오늘은 하나님 나라와 파종의 관계에 관한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파종(씨를 땅에 뿌리는 것)...

2월19일 있는 자와 없는 자 [1]

  • 2007-02-19
  • 조회 수 2114

2007년 2월19일 있는 자와 없는 자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막 4:25) 21-25절을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네 개의 가르침으로 구성됩니다. 21절은 등불, 22절은 은폐와 노출, 24절은 헤아림의 기준, 그리고 25절은 ‘있는 자와 없는 자’입니다. 이 네 가르침의 공통점은 신자들의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특히 25절은 그 심판을 매우 노골적으로 묘사합니다.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은 충분히 받을 것이며, 그 준비가 없는 사람은 그 있는 것까지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

2월18일 현실과 현실 너머 [2]

  • 2007-02-18
  • 조회 수 1407

2007년 2월18일 현실과 현실 너머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막 4:24) 24절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공동번역이 주는 뉘앙스는 개역개정판과 상당히 다릅니다. 공동번역은 긍정적인 뉘앙스지만 개역개정판은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깁니다. 어쨌든지 마...

2월17 일 들으라! [1]

  • 2007-02-17
  • 조회 수 1335

2007년 2월17 일 들으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 4:23) 오늘 본문의 ‘들을 귀’는 9절 말씀과 똑같습니다. 9절 묵상에서 저는 주로 들을 귀에 집중해서 설명했지만, 오늘은 주로 ‘들으라.’는 관점으로 묵상의 문을 조금 열어보겠습니다. 신앙이 들음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다바르)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셨고, 사도들을 통해서도 역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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