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85)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음성을 들을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요한은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죽는다는 것과 살아난다는 말이 실제 육체적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는 지금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들이다. 예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요한이 교회 밖의 사람들이 들으면 언짢게 들릴 수 있는 발언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의 음성에서 절대적인 생명 구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생명 구원은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모든 이념과 체제로부터의 해방이다.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고 로마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이다. 그 경험이 곧 살아나리라.’는 말의 실질적인 의미이다.

공동번역으로 다시 읽겠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요한복음은 지금을 강조했다. 루터는 “Es kommt die Stunde und ist schon jetzt...”라고 표현했다. 이 그 시간이 여기에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지금 여기는 늘 똑같다. 예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살아나는 일들이 지금 여기에 보이지 않는다. 요한은 지금 여기서이런 것과 다른 어떤 결정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살아나는 경험, 생명을 얻는 경험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의 일이다. 그걸 놓치면 우리의 신앙은 공허하다. 미래주의에 떨어져서 삶의 역동성을 놓칠 수 있다.

이 발언을 지금 여기서 실존적으로 예수 경험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좋긴 하지만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게 좋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기보다는 내용을 충실하게 채운다고 하는 게 옳다. 지금 여기서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은 시간과 존재의 신비를 느낄 때 주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신의 삶이 개체로서 독립되어 있는 게 아니라 지구의 다른 것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 있어야만 자기 염려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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