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112)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오병이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던 기억은 유대인들에게 강렬했을 것이다. 예수는 27절에서 그런 먹을거리들이 우리의 근본적인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게 바로 썩을 양식이다. 썩을 양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 필수다. 예수도 주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간구하라고 가르쳤다. 문제는 그런 양식에만 몰두하면 결국 우리의 삶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과다 경쟁으로 인해서 공동체의 근간이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오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는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수년 먹을거리를 확보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른 하나는 더 근본적인 것으로서 아무리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아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먹다 죽다.’는 실존에 갇혀 있다. 많이 먹다 죽는 사람이 있고, 적게 먹다 죽은 사람이 있을 뿐이지 여기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 썩을 양식에만 매몰되면 결국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생명을 풍요롭게 누릴 수 없다.

예수는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는 양식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영생은 요한복음의 키워드다. 앞에서도 짚었지만,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시간의 연장으로 접근하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영생이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에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은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시간의 질적인 변화다. 이런 말이 관념적인 것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양자역학도 역시 관념이다. 어쨌든지 시간의 길이로만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에 가까이 가기 힘들다.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려면 두 가지 공부가 필요하다. 하나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공부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를 통해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공부다. 일반적인 신앙생활에서는 이런 공부가 없어도 된다. 오히려 이런 공부를 불편하게 여긴다. 교회가 제공하는 교회생활에 충실하면 된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 다만 눈이 밝은 사람들은 더 깊은 중심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은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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