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2)

조회 수 1358 추천 수 0 2019.09.04 21:39:42

벧전 1:1절에 열거된 지명은 주로 지금의 터키 지역에 속한다. 그곳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 흩어진 이들은 디아스포라다. 베드로전서 기자는 기독교인의 삶을 기본적으로 나그네라고 규정한다. 흔한 표현이기는 하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도 있다. 나그네 개념을 전문 용어로 바꾸면 구도자다. 구도자는 도()를 찾는 사람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또는 하나님 나라를 찾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여기에 온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돌아서는 사람이다. 돌아서는 삶을 회심(메타노이아)이라고 한다. 한 번의 회심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서 기독교인은 길을 가는 태도로 살아간다. 구도자들은 이런 구도를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구도적 삶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걸음은 멈춤이 없다. 이는 곧 우리의 삶에 완성이 없다는 뜻이다. 푯대를 향해서 나아갈 뿐이다.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뒤에 있는 것은 버린다.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장난감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과 같다.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사들이 수행 과정에서 행하던 전통의 하나는 순례다. 지금은 산티아고 순례가 가장 유명하다. 순례는 나그네로 사는 삶을 몸으로 훈련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체력에 맞도록 200를 가거나 500, 또는 그 이상을 갈 수 있다. 순례 과정은 아주 단순하다. 그냥 걷는다. 무상무념에 떨어질 수도 있고, 주변의 경치에 몰두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순례 행위도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볼 수 있는 삼보일배나 오체투지가 그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순례 중에 일상의 일을 모두 잊는다는 점이다. 그는 오직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향해서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그 사이에 숨 쉬고, 일용할 양식으로 배를 채우고, 배설하고 잔다. 인간의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을 한다. 자식과 사업 등을 걱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의 삶이 산티아고 순례와 같은 나그네라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지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이게 쉽지 않다. 기독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묶여서 산다.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긴 하다. 높은 수준의 신앙에 들어간 사람은 현재 놓인 상황과는 별개로 좀 더 가볍게, 그러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겠지만, 낮은 수준의 신앙에 머문 사람은 반복해서 일희일비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한 단계만이라도 위로 오르기 원한다면 이런 과정을 이미 겪은 스승을 만나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성경 기자들이 우리에게 스승이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바꾸면 그들은 우리에게 거룩한 멘토다. 이번 베드로전서 공부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으면 한다.

본문은 나그네인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을 2절에서 정확하게 묘사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지금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개역개정 번역은 은혜롭게 들리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공동번역이 낫다. “여러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에 따라 뽑혀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분의 피로 죄가 씻겨진 사람들입니다.” 마틴 루터 번역 성경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그네인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서 선택되어서, 성령을 통하여,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하시고 피를 뿌리심으로써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에서 순종이라는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지 아니면 나그네에게 연결되는지,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루터 성경과 KJV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 게 맞다. 교리적으로 볼 때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의 순종이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었으며라는 공동번역은 오역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흔히 들었던 이야기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믿는 사람이 될지 아닐지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면 개인의 책임은 면제된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표현은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인 예정론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기계적인 예정론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은 실종된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표현은 신앙의 신비를 가리킨다.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단순히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도 대단히 특이한 사건이기는 하다. 친구를 따라서 왔든지, 모태 신앙인이든지, 스스로 선택했든지 어떤 경우라도 다 신비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특별한 일이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말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본문은 이를 미리 아심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셨다는 말은 지금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놀라운 고백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무조건 화려하다는 뜻이 아니다. 여러 가지로 곤란한 지경에 떨어질 수도 있다. 벧전의 수신자들은 특히 어려웠다. 그들은 박해를 일상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학자들에 따라서 네로 황제 시대라고 말하기도 하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라고도 한다. 두 황제 모두 기독교를 박해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미 하나님이 아셨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아셨다는 말은 자신들의 삶이 내면적으로 볼 때 최고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신앙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그 사람의 영성에 달려 있다.

인사말의 마지막 문장은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이다. 은혜와 평화는 물론 하나님이 주신다.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에서 은혜와 평화를 찾으려고 한다. 가장 세속적인 방식은 돈이 그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기지 못한다(6:24)는 주님의 말씀을 자주 들었지만, 대다수 사람은 어중간하게 걸쳐서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의 삶을 돈이 완벽하게 장악했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하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공고히 지배하는 21세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점에서 옛날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투쟁적으로 살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하나님만이 은혜와 평화를 주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붙들어야 한다. 붙든 사람은 고단한 세상살이에서도 기독교인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벧전 기자는 인사말을 끝내고 5장에 걸쳐서 기독교인다운 삶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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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하늘연어

2019.09.06 02:00:37

(교정입니다. ^^;;)

두 번쨰문단 셋째 줄a "그냥 걷을 뿐이다."-------- 그냥 을 뿐이다.

[레벨:23]브니엘남

2019.09.29 09:42:09

21세(기)의 기독교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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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2: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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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4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요한은 계속 환상을 봅니다. 10~12절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찬양입니다. 구원(ἡ σωτηρία)과 능력(ἡ δύναμις)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ἡμῶν)와 그리스도의 권세(ἡ ἐξουσία τοῦ Χριστοῦ)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단어들이 망라되었습니...

계 12: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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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2: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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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2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하늘에서의 전투가 끝났습니다. 영과 그의 부하들은 미가엘과 천사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은 생명의 시원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세력을 떨치면 땅에서도 세력을 떨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용으로 표현된 악한 세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궁극적인 승리를 얻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죽음도 최후의 승리가 아닙니다. 성경은 악과 그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들...

계 12:7 [1]

  •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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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1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선과 악의 전쟁입니다. 고대인들은 선과 악의 싸움이 단지 땅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더 원천적으로는 하늘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너무 잔인해서 다른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가엘과 용이 대결을 펼칩니다. 미가엘은 하나님의 백성을 도와주는 천사장입니다. 단 10:13절과 21절, 그리고 12:1절에 ...

계 1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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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200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자가 낳은 아이는 하늘로 올라가서 안전하게 되었고, 이제 여자는 광야로 도망갑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린 것처럼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교회를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천이백육십일은 계 11:2절에 나오는 마흔두 달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 구절에서 마흔두 달을 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흔두 달은 완전 숫자 7년의 반에 해당합니다. 유대...

계 12:5 [2]

  •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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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9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이야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이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거나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림 받았다.’라는 표현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긴 합니다. 앞에서 2절이 말하는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어 아파서 애를 쓰고 부르짖는다.’라는 표현이나 4절이 말하는 ‘해산하려는 여자’라는...

계 12:4 [1]

  •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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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2:3 [4]

  • 202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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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7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3~4절은 다니엘이 본 환상(단 7:7, 8:10)을 기본으로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단 7장에서 ‘네 짐승 환상’에 관해 설명했고, 8장에서는 ‘숫양과 숫염소 환상’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당시의 로마 정권을 바벨론과 같은 악한 세력으로 봅니다. 바벨론이나 로마 모두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제국입니다. ...

계 12:2 [2]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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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6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계 12:2절에서 요한이 묘사하는 한 여자의 출산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출현을 가리킵니다. 산모가 아파서 애를 쓰고 부르짖는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환난과 시련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옛날에는 출산 중에 목숨을 잃은 산모도 많았습니다. 실제로 교회가 역사에 출현하기 힘들었고,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지속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계 12:1 [1]

  • 2023-07-26
  • 조회 수 28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5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이제 새로운 단락이 시작합니다. 요한계시록이 22장까지 있으니까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로 넘어가는 셈입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조를 짚겠습니다. 제가 참고하는 <관주, 해설 성경전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을 본문으로 하고 단락마다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 주석은 독일 성서 공회에서 제작한 성경에 달린 내용...

계 11:19 [1]

  • 2023-07-25
  • 조회 수 30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4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11장 마지막 절입니다. 요한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문이 열리는 장면을 봅니다. 언약궤가 보입니다.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는 법궤, 또는 하나님의 궤로도 불립니다. 언약궤 안에는 모세의 십계명 돌 판과 그의 형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물품은 모두 광야 시절에 벌어졌던 특별한 사건에 기인합니다. 그 사건...

계 11:18 [2]

  • 2023-07-24
  • 조회 수 28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3 11:18 이방들이 분노하며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방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헛된 욕망을 더는 발산할 수 없는 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순간이 왔는지도 알아챌 수도 있으나 알아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채도 화를 낼 것이며, 알아채도 화를 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늘 분...

계 11:17 [1]

  • 2023-07-21
  • 조회 수 28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2 11: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십사 장로들이 말합니다. 노래이기도 하고 찬양이기도 합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가 사용하는 예배 찬송가에 이를 주제로 한 찬송이 있을 겁니다. ‘감사한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Εὐχαριστοῦμέν로 나옵니다. ‘유카리스투멘’은 We give thanks라고 영역할 수 있습니다. 그 단어에서 성찬을 가리키는 ‘유카리스트’(Eucharist)가 왔습니다. 빵...

계 11:16 [1]

  • 2023-07-20
  • 조회 수 30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1 11: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 4:4절에 나온 이십사 장로들이 여기서 다시 등장합니다. 계 4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문무백관이 늘어선 어전회의 풍경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썼습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를 둘러싼 또 다른 보좌에 앉았습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려는 문학적 장치입니다. 요한은 일곱 봉인과 일곱 천사 이야기가 끝나가는 순간에 다...

계 11:15 [1]

  • 2023-07-19
  • 조회 수 29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90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일곱째 인이 열릴 때부터(계 8:2) 일곱 천사가 차례대로 등장하기 시작하다가 이제 11:15절에서 드디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소리가 울립니다. 세상이 거부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 소리의 내용은 한 마디로 세상이 우리 주님의 나라가 되고, 그 세상을 주님께서 영원토록 통치하시는 것입...

계 11:14 [2]

  • 2023-07-18
  • 조회 수 19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89 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요한은 화를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째 화에 관한 이야기는 9:12절로 끝났고, 둘째 화에 관한 이야기는 9:13절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의 신호는 여섯째 천사의 나팔소리입니다. 그 이야기는 계 11:13절까지 이어졌습니다. 요한은 11:14절에서 셋째 화가 속이 이르렀다고 외칩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이 ‘화’로 번역한 그리스어는 Οὐαὶ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사전을 보니 여성 명사로 나옵니다. horror, disaster, cal...

계 11:13 [1]

  • 2023-07-17
  • 조회 수 28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88 11: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두 선지자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뒤에 사람들에게 큰 재앙이 내립니다. 지진이 나서 칠천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연재해는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고, 이전 벌어졌던 재난을 요한이 다시 소급해서 말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이런 대재난을 종종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

계 11:12 [1]

  • 2023-07-14
  • 조회 수 24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87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자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나님의 생기를, 즉 생명의 영을 받아 다시 살아난 두 선지자는 하늘에서 울리는 큰 음성을 듣습니다. 만화처럼 실감 나게 묘사됩니다. 고대인들에게 우주 공간으로서의 하늘은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빛과 비가 거기서 내려옵니다. 천둥과 번개도 치고, 유성도 떨어지고, 가끔 일식과 월식 현상도 나...

계 11:11 [1]

  • 2023-07-13
  • 조회 수 31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86 11: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여기서 요한은 정말 이상한 현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시체에 들어가니까 시체가 일어섰다는 겁니다. 살아났다는 뜻이겠지요. 여기서 생기(生氣)는 헬라어 성경에 나오는 단어 πνεῦμα ζωῆς의 번역입니다. 프뉴마는 영이고, 조에는 생명입니다. ‘생명의 영’(spirit of life)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어쨌든지 이 구절은 에스겔 37장을 배경으로 하...

계 11:10 [1]

  • 2023-07-12
  • 조회 수 24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85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두 선지자는 3절부터 반복해서 나오는 두 증인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누군지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모세나 엘리야를 가리킬 수도 있고,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시대의 어떤 교회 지도자일 수도 있습니다. 10절은 그들이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의미로 괴롭힌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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