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69)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은 예수의 공생애 자체에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다. 공관복음에는 병행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수난 전승 외에는 병행구가 거의 없는 게 그 증거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공생애를 가능한 정확하게 보도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공생애를 재해석한 것이다. 공관복음도 각각 자신들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요한복음만큼은 크지 않았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의 생각보다는 요한복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비해서 훨씬 관념적인 성격이 강하다. 시작부터 그 표시가 난다. ‘태초에 말씀, 즉 로고스가 존재했다.’는 문장으로부터 요한복음이 시작한다. 예수를 헬라 스토아 철학의 핵심 용어인 로고스라고 본 것이다. 로고스 개념이 요한공동체에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특징이 요한복음에서 반복된다. 위의 36절도 그렇다. 거두는 자는 지금 요한복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다. 삯을 이미 받았다는 말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뜻으로 들린다. 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모르겠다. 지금 그들은 영생의 열매를 모으는 중이다. 로고스가 헬라 철학에 뿌리를 둔 용어인 것처럼 영생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로고스가 관념적인 것처럼 영생도 역시 그렇다. 이런 관념적인 표현을 뚫고 들어가려면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철학적인 사유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철학을 기독교 믿음과 충돌하는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 자리한다. 성경은 믿음으로 읽고, 또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사유가 믿음이나 성령과 대립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가능한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 노력이 바로 철학적인 사유다. 철학은 세상과 삶과 역사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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