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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어록(201) 9:3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9장부터 새로운 단락이 시작한다. 예수와 함께 길을 가다가 시각장애인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에게 누구의 죄로 인해서 이 사람이 장애인이 되었냐고 물었다. 오지랖이 넓은 제자들이다. 재난은 죄의 결과라는 주장이 고대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욥의 친구들도 욥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다그쳤다. 욥은 친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런 재앙을 받을 만큼의 죄가 없다고 강변했다. 욥이 뻔뻔한 건지 친구들의 생각이 짧았던 건지는 좀더 생각해봐야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관점을 말한다. 하나는 시각장애의 원인을 죄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이 기회에 하나님의 일이 이 사람에게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난을 죄로 보는 시각은 고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오늘도 큰 힘을 발휘한다. 다른 건 접어두고 빈곤 문제만 보자. 절대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낙인찍힌다. 다른 사람이 공부할 때 놀기만 하고,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할 때 빈둥대다가 저런 신세가 되었다고 말이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심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노숙자나 폐지 수집하는 노인들을 목격했을 때 자녀들에게 너도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돼!”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빈곤과 불행의 원인이 그들의 죄라는 발언과 같은 뜻이다.

불행의 원인을 죄라고 보는 시각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인 기복주의도 뿌리는 이와 같다.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수행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겠다는 순박한 생각 자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 문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현상이다.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자녀들에게 큰 사고가 일어나면 새벽기도회에 빠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지, 십일조를 온전하게 바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이런 태도는 표면적으로 신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불신앙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심리적인 죄책감은 설 자리가 없다. 재난을 당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고칠 것은 고치고, 저항할 것은 저항하고, 참아야 할 문제는 참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능력이 발현되는 일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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