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87)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예수의 연설에서 아들이라는 정체성과 인자라는 정체성이 순환되고 있다. 아들은 인자이고 인자가 곧 아들이다. 26절에서는 아들의 정체성이 강조되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지한 자다. 27절에서는 인자의 정체성이 강조된다. 인자는 심판의 권한을 담지한 자다. 생명과 심판은 일견 대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생명은 살리는 것이고 심판은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생명은 심판을 통해서 드러날 것이며, 심판은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사건이다.

앞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인자는 고대 유대의 묵시사상에서 세상 마지막 때 오리라고 기대된 심판자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 이런 심판자 표상을 부여했다. 예수를 통해서만 생명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초기 기독교의 주장을 주변 사람들이 인정할 수는 없었다. 다른 건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심판자 표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건이다. 종교성이 깊은 유대인들이나 철학적인 헬라사람들이나 정치적인 로마사람들에게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는 연민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심판자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었다.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갔는지를 아는 게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도 어느 정도 말했고, 앞으로도 반복해서 말하게 될 것이니 여기서는 그만 두겠다. 한 마디만 한다면,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통해서 종교와 정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게 그 대답이다.

이 해방을 주술적인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해방은 속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이 당시 가장 처참한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어떤 불행이 닥칠지, 즉 자신의 인생이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곧 속죄가 가리키는 실질적인 의미이다.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과민하게 생각한다면 그는 속죄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19.05.16 07:45:41

종교와 정치의 억압으로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게 그 대답이다. -

종교와 정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는 게 그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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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05.16 22:09:22

예, 고쳐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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