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87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자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나님의 생기를, 즉 생명의 영을 받아 다시 살아난 두 선지자는 하늘에서 울리는 큰 음성을 듣습니다. 만화처럼 실감 나게 묘사됩니다. 고대인들에게 우주 공간으로서의 하늘은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빛과 비가 거기서 내려옵니다. 천둥과 번개도 치고, 유성도 떨어지고, 가끔 일식과 월식 현상도 나타납니다. 기껏해야 점성술에 의지해서 살던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비밀 충만한 공간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주기도의 첫 문장이 그들에게는 실감이 났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저런 표현이 유치하게 들립니다. 고대인들이 전혀 몰랐던 우주에 관한 정보가 천문학으로 상당 부분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봤자 우주에 관한 우리의 정보는 해변 백사장의 모래 한 알에 불과하지만요.
오늘 그리스도인은 성경 시대의 우주관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고,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는 ‘하늘’을 무의미하게 생각해도 곤란합니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겠지요. 성경이 말하는 하늘은 궁극적인 생명이 은폐된 곳이라고 말입니다. 부활 생명이 완성될 종말론적 미래가 곧 하늘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미래에 이미 계신 분이십니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궁극적인 미래가 오늘 우리의 삶을 이끌어갑니다. 이런 설명이 손에 잡히지는 않을 겁니다.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양자의 세계가 우리 손에 잡히지 않으나 분명한 물리적 현실인 거와 같습니다.
부활한 두 선지자는 올라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궁극적인 미래의 생명 세계로 옮겨졌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전승을 저렇게 표현할 것일까요? 부활과 승천은 똑같은 사건을 다르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두 선지자의 승천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을 수는 없습니다만 ‘주님께서 마지막 때 다시 오십니다.’라는 신앙고백처럼 생명의 궁극적인 현실성(ultimate reality of life)과 닿아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원수들도 구경하더라.’라는 문장을 여기서 과감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공동번역 [11:12 그리고 그 두 예언자는 자기들을 향해서 ”이리로 올라오너라.“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예언자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새번역 [11:12 그 두 예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로 ”이리로 올라오너라“하는 큰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이 원수들이 그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죽어서 첫번째로 부활해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계시록의 두 명의 증언자들이 죽어서 두번째로 부활해서 승천하네요.
계시록이 말하는 것은 주님을 위해 증언한 사람들은 부활 승천한다고 알려 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이 기독교 2천년을 지탱해온 힘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물론 잘못 해석하면 비기독교 지역에서 복음 전파라는 최면이 될 수도 있고요.
2007년 7월에 분당 샘물교회 교인 23명이 내전중인 아프가니스탄의 선교로 최악을 초래했고요.
그래서 성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가 봅니다.
상황을 극단적으로만 몰아가지 않게 열린 마음과 열린 귀로 바로 봐야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