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42) 3:16(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에게는 외아들이 있을 수 없다. 외아들을 둔다는 말은 신화적인 표현이다. 구약성경 어느 구석에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올지는 모른다. 요한 공동체가 예수를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생명을 경험했다는 데에 있다. 그 생명으로 인해서 그들은 죄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곧 하나님이었다. 그들의 생명 경험은 먼 미래에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발생했다. 예수를 믿으면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늘 쫓기듯이 살아간다. 경제적인 궁핍과 신체적인 질병이나 인간적인 고독이 우리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도 또 다른 문제가 우리의 삶을 위축시키거나 과잉 반응하게 만든다. 예술가들과 시인들은 전혀 새로운 삶을 경험하지만 그들도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시합에서 이겼을 때 기쁨을 만끽하지만 졌을 때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거와 같다. 모든 인생살이가 원하는 대로 잘 풀려도 삶의 권태는 피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도 이런 일상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서 영생을 얻는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실체가 있는가? 허상인가? 관념인가? 자기 합리화인가?

어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저절로 영생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세계는 말이 아니라 경험으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이런 주장에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 경험을 다른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설명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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