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고스 012, 1:50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이미 자신을 보았다는 예수의 말을 듣고 이렇게 고백한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1:49). 번역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우리말 어투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좀더 의역에 가깝게 바꾸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나다나엘의 이 고백은 개인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공식적인 고백이다.

나다나엘의 고백을 듣고 예수는 두 마디 말씀을 한다. 하나는 50절이다. 예수는 나다나엘에게 이르기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을 이미 알아보는 것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것은 지혜로운 선생에게 나타나는 능력이다. 유대 역사에는 예수 외에도 이런 선생들은 많았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 호세아 등등, 구약의 선지자들은 뛰어난 영적인 카리스마를 행사할 수 있었다. 예수는 그런 선지자 범주에 속한 이가 아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킬 메시아다. ‘큰 일은 곧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앞으로 일어날 더 큰 일에 마음을 둔다. 이는 곧 과거와 현재의 일이 아무리 특별해보여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이룬 삶의 업적에 매달리지 않는다. 학문적인 업적이나 목회적인 업적, 또는 사업이나 가족 관계에서 이룬 업적을 가볍게 여긴다. 따라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게 좋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19:26). 어떤 이들은 살아있으나 소금 기둥이나 마찬가지다. 업적만이 아니라 죄도 그렇다. 지나간 죄의 짐에 눌리는 삶은 복음의 삶이 아니다. 우리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니, 안심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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