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1)
나다나엘에게 던진 예수의 두 번째 발언은 첫 번째 발언에 나온 ‘큰 일’에 대한 해설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다. 하늘은 늘 열려있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생명의 비밀이 간직된 곳이다. 태양과 달과 별과 구름과 비는 그들에게 비밀 가득한 대상이었다. 사람은 그 대상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생명의 비밀이 열린다는 뜻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이 고대인들의 신화적인 세계관에 의한 것이지만 그 본질에서는 오늘 우리의 세계관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현대 생물학과 물리학은 고대인들이 하늘이라고 묘사한 우주를 당시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상대적이라서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이 일만 개라고 할 때 고대인들은 한 개를 알고 우리는 5개를 아는 것에 불과하다. 고대인들은 9,999개를 모르고, 현대인은 9,995개를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른다. 밝혀지는 것이 늘어날수록 모르는 것도 더 늘어날 뿐이니 과학으로 세계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지구에서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으로부터 출발한 빛은 9분 걸려 지구에 도달한다. 현대 물리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태양의 그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모른다. 시간도 여전히 비밀이다. 지금 이 순간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우리가 다 파악할 수 없는 과거의 것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내가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이 사건도 따지고 보면 엄청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인간으로 진화한 유인원들이 멸종했다면 ‘나’는 아예 지구에 나타날 수도 없었고, 어제 테니스장에서 뛰다가 다쳤으면 나는 지금 누워있어야만 했다. 지금 궁극적인 생명이라 할 하늘은 닫혀 있다. 언젠가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날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을 가리켜서 ‘하늘이 열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