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47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인자)이신 예수께서는 쇠막대기로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권세’를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분이십니다. 권세는 헬라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입니다. 이런 단어를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폭력적인 능력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강한 비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입니다. 비바람은 아무리 강하게 불어도 사람의 외투를 벗기지 못하지만, 햇살은 사람이 스스로 외투를 벗게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햇살처럼 경험하셨기에 세상의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그 햇살을, 정확히 말하면 생명의 능력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를 정도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경험했기에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인식하고 경험하면 하나님의 아들, 또는 딸이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셨으나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착하게 살고 희생적으로 살고 하나님에 관해서 많은 걸 알아도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말하다 보니 이런 설명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네요.
공동번역[2:27 그는 쇠지팡이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
공동번역으로 보니 쬐금 다르게 들리네요.
우리 영혼의 질그릇에는 뭐가 있을까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사회적 통념들...
정목사님이 늘 말씀 하신 생명 경시와 파괴, 자본주의, 물질숭상, 사회적 약자의 외면 등등
이것이 우리를 지배 하고있는 깨질것을 알먼서도 지키려는 영혼은 질그릇이 아니런지요.
주님께서 어리석은 영혼의 질그릇을 쇠지팡이로 부숴으면 좋겠습니다.
알면서도 아직도 깨질 질그릇을 추종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