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교회 구원(75)

  • 2025-04-24
  • 조회 수 350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빈부 격차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소유 욕망이 무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단적인 예로 부동산 투기가 파멸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곤 한다. 재산 증식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토대라는 인식과 경험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똑같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 대형 교회 50개를 추리면 반이 한국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교회도 한국에 있다. 한 교단에 있는 교회인데도 A라는 교회에는 수천...

교회 구원(74)

  • 2025-04-23
  • 조회 수 310

이런 성경 구절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늘 경험한다고 말이다. 교우들이 서로 보살피고 존경하면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경험 말이다. 칭찬받을 만하다.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따뜻하고 단단한 소속감을 교회에서 느낄 수만 있어도 건강한 교회다. 전통적으로 교회의 기능을 말할 때 예배, 교육, 봉사와 겸해서 친교(코이노니아)까지 포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거꾸로 교우들이 전혀 하나가 되지 못한 교회도 적지는 않다. 같은 교회 교우들끼리, 목사와 일반 신자들...

교회 구원(73)

  • 2025-04-22
  • 조회 수 307

엡 4:4-6절은 이렇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모든 교회는 본질에서 하나다. 교회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은 모두 한 하나님을 믿는다.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도 하나이고, 구원도 하나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세례도 하나이고, 성찬식도 하나다. A라는 교회에서 받은 세례와 B라는 교회에서 받은 세례가 ...

교회 구원(72)

  • 2025-04-21
  • 조회 수 306

교회의 공공성 사도신경에 따르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전통적으로 “공교회를 믿는다.”(Credo … Ecclesiam catholicam.) 여기서 ‘카톨릭’이라는 단어는 로마가톨릭 교회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주교나 감독이 관리하는 교구를 가리킨다. 한 장소에 건물과 조직을 구성한 개별 교회만이 아니라 그 개별 교회가 전체를 이루는 교구가 곧 교회라는 뜻이다. 즉 교회는 사적인 게 아니라 공적이고 개별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이라고 말이다. 영어 사도신경은 이를 Universal로 쓴다. ‘공교회’ 개념을 한국교회 실정에 맞춰서 설명하면 노회(지방회...

교회 구원(71)

  • 2025-04-11
  • 조회 수 507

하나님의 이름 우리는 지금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라는 사도신경의 한 문장을 따라가는 중이다. 교회의 구원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데에 있으며, 교회의 교회다움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는 바로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라는 문장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 자체가 거룩한 건 아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거룩하지 않은 행태는 자주 나타났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결속될 때 교회는 거룩하다. 교회가 거룩하지 않다고 느...

교회 구원(70)

  • 2025-04-10
  • 조회 수 357

인간 실존의 어두운 심연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를 극히 낮춘다. 당연히 낮출 수밖에 없다. 현재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마저 두렵고 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오체투지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심연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 12:1-8절에는 예수 앞에 엎드려 그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닦는 마리아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들고 온 향유는 고가품이다. 결혼 지참금으로 부모가 마련해준 게 아니겠는가. 가룟 유다는 그녀를 나무...

교회 구원(69)

  • 2025-04-03
  • 조회 수 509

한국교회의 일반 그리스도인이 성소수자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의 성적 행위가 죄이기에 그런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확신이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데에 있다. 이를 영혼 구원에 대한 유별난 열정이라고 말해도 좋다. 하나님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해서 착한 사람은 천국에 보내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보낸다는 이중적 구원 표상에 묶인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표어를 가슴에 새긴다. 칼뱅의 이중 예정에 대한 오해가 이런 표상을 불러왔다. 눅 16:19-31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

교회 구원(68)

  • 2025-04-02
  • 조회 수 444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인류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었다는 신앙이 있다. 우리를 대신하셨다 하여 이를 대속론이라고도 한다. 이게 사실은 말이 되지 않는 논리이다. 여기 살인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고, 무기 징역 선고를 받을 수 있다. 그의 어머니가 대신하여 죽을 수는 없다.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우리가 벌을 받는 게 논리적으로 옳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외아들을 보내셨고 죄 없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

교회 구원(67)

  • 2025-04-01
  • 조회 수 524

신앙의 형식과 내용 성경은 시인의 영혼으로 읽어야 그 내용까지 이해할 수 있다. 성경 내용과 기독교 교리는 사실 언어가 아니라 주로 메타포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거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다.”라는 표현이 그런 것들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메타포와 상징과 비유가 가리키는 실질적인 내용을 모르기에, 즉 시를 시로 읽을 줄 모르기에 많은 교회 지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성경을 읽고 독단적인 구원론을 설파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영혼의 만족을 얻...

교회 구원(66) [1]

  • 2025-03-31
  • 조회 수 569

대표적으로 시인들은 이런 존재의 빛과 그 신비를 일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문단에 등단한 전문 시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시인의 시각과 감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앞의 두 연만 보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시인의 영혼에서 국화꽃과 소쩍새의 울음이, 그리고 국화꽃과 천둥소리가 신비롭게 연결되었다. 물리학적으로는...

교회 구원(65)

  • 2025-03-28
  • 조회 수 663

서양철학만이 아니라 동양철학도 존재의 신비를 화두로 삼는다. 노자의 도덕경 첫 문장이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부르면 본래의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붙이면 이미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도덕경이 말하는 이 도를 말장난이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도 있다. 실체로 존재하는 색의 세계가 곧 비어있는 공이고, 비어있는 공의 세계가 곧 실체인 색이라고 말이다. 봄이 되면 나무에서 잎이 나오고,...

교회 구원(64)

  • 2025-03-27
  • 조회 수 512

왜 유는 존재하고 무는 없는가, 하는 질문은 다음을 가리킨다. 나무는 존재하고, 내가 사는 마을에 종종 나타나는 고라니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나무와 고라니 중간쯤 되는 어떤 것은 없다. 그것은 무(無)다. 바위는 존재하고 강물도 존재하는데, 바위와 강물 중간쯤 되는 어떤 것은 없다. 왜 없는가? 없으니까 없다고 말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바로 앞에서 인간 존재가 특별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존재하게 되었으니 특별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인간과 비슷한 어떤 동물이 없다. ...

교회 구원(63)

  • 2025-03-26
  • 조회 수 603

철학자들은 “왜 유(有)는 존재하고, 무(無)는 없는가?”를 묻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질문으로 들리겠지만, 철학자들에게는 유와 무의 관계가 신비롭고 경이롭다. 신비롭다는 말은 그것의 실체를 우리가 여전히 모른다는 뜻이면서, 볼 눈이 있는 이에게 어느 정도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앞에서 하이데거가 사물을 얼마나 경이롭게 보는지를 설명했다. 모든 사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구성물이니 경이로운 건 당연하다. 그중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또한 세상을 다스려야 할(창 1:26) 인간은...

교회 구원(62)

  • 2025-03-25
  • 조회 수 595

일상의 거룩함과 경이와 신비를 가장 깊이 있게 느끼는 이들은 철학자와 시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는 이 두 역할을 합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끊임없이 철학자와 시인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 하이데거는 사물(Ding)을 가리켜서 사중자(四重者, Gevierte)의 회집(會集, Versammlung)이라고 보았다. 사중자는 땅과 하늘과 신성과 죽을 자다. 여기 포도주잔이 있다. 잔에는 포도주가 담긴다. 포도주는 포도가 발효된 액체다. 포도를 맺은 포도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린다. 하늘의 태양 빛과 비를 선물로 받는다. 포...

교회 구원(61)

  • 2025-03-24
  • 조회 수 607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경험은 물리학이라는 전문 영역만이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도 지천으로 널려 있다. 씨앗과 꽃의 관계만 보자. 해바라기 씨앗의 색깔과 모양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씨앗을 반토막 내서 그 안을 보면 견과류에서 볼 수 있는 살점만 보인다. 그 씨앗이 땅에 심겨 일정한 조건 가운데서 시간이 지나면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변한다. 2미터 높이로 자란 해바라기꽃을 씨앗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변화를 밋밋하게 여긴다. 우리의 영혼이 경...

교회 구원(60)

  • 2025-03-21
  • 조회 수 724

거룩한 두려움은 물리학자들도 느낀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별’(Pale Blue Dot)이라는 용어를 널리 알렸다. 1990년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는 순간에 혹시나 해서 카메라 방향을 지구로 돌려서 찍은 사진에 지구가 잡혔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모래알을 흩뿌린 듯한 은하수에서 창백하게 푸른 빛을 내는 별이 있었다는 거 아닌가. 물론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지만 태양 빛을 받아서 푸른 빛을 반사한다. 그렇게 밝지 않아서 창백한 별이라고 불렀으나 푸른 빛은 지구에 생...

교회 구원(59)

  • 2025-03-20
  • 조회 수 606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을 경험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의 거룩함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거룩함 앞에서만 자기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도 신을 벗어야만 했다. 양을 치던 사람이 신을 벗으면 무기력해진다. 양을 돌볼 수가 없다. 포식자들과 싸울 수도 없다. 거친 들판을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포기하고 자기를 완벽하게 낮춰야만 한다. 두 팔꿈치와 두 무릎과 이마, 이렇게 신체 다섯 군데를 땅에 대고 절하는 ‘오체투지’ 영성인 셈이다. 가톨릭교회 사제들도 사...

교회 구원(58)

  • 2025-03-19
  • 조회 수 697

지금 나는 사도신경이 말하는 ‘거룩한 교회’ 개념을 밝히려고 모세의 소명 이야기를 따라가는 중이다. 자기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라는 소명에 앞서 모세는 땅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이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 역시 성령을 받고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소명에 앞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의 거룩함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경험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이런 경험이 없는 소명감은 종교적 자기 열망에 떨어지기 쉽다. 그러다가 소명감이 시나브로 시들거나 광기로 변질된다. 그런 종교적 광기를 우리는 2024년과 20...

교회 구원(57)

  • 2025-03-18
  • 조회 수 605

사람이 죄를 지어 타락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 악과 불행이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기에 사람을 무조건 거룩한 존재로 보는 건 너무 순진한(naive)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일종의 낙관적인 생각에 치우치면 타락한 세상과 교회가 구별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일리가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려지는 대홍수에서 구원받으려면 노아 방주에 들어가야 했던 것처럼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으려면 교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선전한다. 내가 알기로 사이비 신...

교회 구원(56)

  • 2025-03-17
  • 조회 수 704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사람은 창조의 빛으로 세상을 보기에 모든 사람을 거룩한 존재로 여긴다. 부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이는 법이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 예외가 없다. ‘천하에 죽일 놈’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은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설교할 때 종종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조롱하거나 혐오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조롱과 혐오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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