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49)

조회 수 958 추천 수 0 2019.11.06 19:54:02

511: 송영

 

11.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1절은 다시 송영이다. 이미 4:11절에도 비슷한 송영이 나온다.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왜 하나님께만 권능을 바쳐야 하는가? 그걸 실제로 어떻게 경험할 수 있나? 칼 바르트는 하나님을 존재 유비가 불가능한 절대 타자라 했고, 폴 틸리히는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했으며, 판넨베르크는 만물을 규정하는 현실성이라고 개념화했다. 과정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은 과정(process)이고, 실존주의 신학자, 예를 들어 루돌프 불트만에게 하나님은 존재의 힘이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고, 예수는 아빠 아버지라고 했다. 이런 경구에 해당하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 그러니 그에게만 권능을 돌리는 건 마땅하지 않은가. 칼 브라텐은 <신의 미래>에서 하나님을 미래의 힘으로 표현했다.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사실상 그것을 미래의 힘으로서 기다린 것이었다. 이것이 타당한 해석이 될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바실레이아’(나라)의 기본 동기는 능력(power)에 있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에서’(en dunamei)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예수는 그 능력을 미래에서 대망하였다. (중략) 그러니 하늘로부터 오리라고 기대했던 구원의 능력을 이제 우리는 미래에서 온다고 기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오늘날 절대적인 미래의 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에서’(from above) 오지 않고 오히려 앞에서’(from ahead) 오실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오히려 예수 자신의 종말론적 기대의 미래성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채위 역, 대한기독교서회, 신의 미래, 99-100)

 

하나님 찬양인 송영의 의미는 자신의 삶을 다 바칠 수 있는 대상에게 영혼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신학자들의 용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우리 영혼이 그쪽을 향하게 된다. 만약 예수 믿고 세속적인 복을 받고 죽어서 천당 가서 천년만년 잘 먹고 잘산다는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 찬양을 바칠 수 없다. 구약 선지자들이 배격했던 바알 숭배에 떨어진다. 바알 숭배에서 벌어지는 송영은 더 자극적이고 더 열광적이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벌인 제사 경쟁에서 이를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믿음의 열정이 중요하지만 믿음의 내용이 사실은 더 중요하다. 가능하면 평신도들도 신학을 공부하는 게 좋다. 비유적으로, 바둑 동호인들이 프로 바둑 기사들의 기보와 그 해설을 공부해야만 바둑 실력이 느는 것과 같다. 점심 내기 바둑만 둔다면 재미는 있겠지만 실력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실력은 퇴보한다.

교회 밖에서 사는 현대인들도 어떤 대상을 향해서 송영을 바친다. 앞의 상투스항목 마지막 단락에서 현대인의 희망은 유물론과 휴머니즘에 토대한다고 말했다. 그 희망의 토대가 바로 송영의 대상이다. 현대인은 물질적인 풍요와 인간 자체를 찬양하면서 산다. 그들에게는 그것의 성취가 생명의 완성이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들에 포함된다. 이런 갈망과 욕망에는 끝이 없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여전히 더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생존 본능이 아니라 탐욕이다. 마지막이 어떨지는 우리가 잘 안다. 파멸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농부 빠홈은 우여곡절 끝에 마음껏 땅을 소유할 기회를 얻었다. 어느 동네의 이장과 계약을 맺었다. 빠홈이 하루 걸어서 돌아온 땅을 모두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조건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야만 했다. 빠홈은 땅 욕심이 강렬하여 처음 약속한 장소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너무 멀리 갔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달리고 걷고, 힘이 빠져 지팡이를 짚으면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처음의 그 장소에 도착하긴 했다. 이장은 빠홈에게 걸어온 그 모든 땅의 주인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그 순간 빠홈은 숨이 끊어졌다. 빠홈의 하인은 그곳에 땅을 파고 빠홈을 묻었다. 빠홈에게 필요한 땅은 두 평도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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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9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요한은 큰 음성을 다시 듣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둘 만한 중요한 표현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증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 2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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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8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이어서 여기 2절에서 ‘새 예루살렘’을 언급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업무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기원전 11세기 왕국의 수도로 삼은 뒤 기원전 587년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파괴될 때까지 예루살렘은 고대 이스라...

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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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7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이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이 시작됩니다. 천년 왕국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겁니다. 천년 왕국은 온전한 천국 이전의 과도기라면 21장부터 시작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그 이야기가 22장 5절까지 이어집니다. 이를 정리하면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 재림의 예수께서 통치하는 천년 왕국, 하늘나라가 완전히 성취되는 ...

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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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56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12절에 이어서 15절에 다시 ‘생명책’이 언급되었습니다. 생명을 얻을 이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입니다. 생명책 이야기는 이미 3:5절과 13:8절과 17:8절에도 나왔고, 21:27절에도 다시 나옵니다. 눅 10:2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이는 모두 불못에 던짐을 당합니다. 불못은 상상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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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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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8 20: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7절 말씀은 요한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천년왕국이 끝나면 사탄이 무저갱에서 잠시 풀려난다는 거 아닙니까. 이미 3b절에서 암시된 내용입니다.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이 천년 간 세상을 다스렸는데도 일시적으로나마 사탄이 다시 발호할 수 있다는 말은 요한이 볼 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사탄의 저항이 끈질기다는 뜻으로 읽히긴 합니다. 여기서 사탄은 그리스도교를 무지막지하게, 그...

계 20:6

  •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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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7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은 둘째 사망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년 간 왕 노릇 합니다. 이 문장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속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가서 사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는 낯섭니다. ...

계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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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6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괄호로 묶인 대목은 일부 전승에 빠진 내용입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성경 원본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실되었습니다. 그 원본을 베끼어 쓴 사본은 많습니다. 사본에 따라서 일부 차이가 있습니다. 위 5절의 괄호 부분이 거기에 해당합니다. ‘첫째 부활’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순교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첫째 부활이 있다면 둘째 부활이 있겠지요. 둘째 부활은 그야말로 우주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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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2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요한은 ‘좀 심하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묵시적 심판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완성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요한은 전문적인 학자이거나 문필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 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묵시적 환상을 믿음의 동료들에게, 특히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열정적으로 선포하는 중입니다....

계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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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41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검에 죽는다거나 모든 새가 나머지 사람들의 살로 배를 불린다고 표현한 19절은 섬뜩한 느낌이 정도입니다. 표현만 그렇지 실제로 그 문장이 가리키는 의미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심층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 탄 자’의 검에 나머지가 죽는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심판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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