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17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은 ‘인자 같은 이’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어 엎드렸다고 합니다. 앞에서 묘사된 그런 형상을 직접 본다면 누구라도 마치 외계인을 본 것처럼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충격을 받을만한 형상은 많습니다. 거미줄에 앉아있는 거미는 신기하고 예쁘게 보이지만, 거미가 인간과 같은 크기로 변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개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크기의 개미를 우리가 본다면 오금이 저릴 겁니다. 요한은 지금 이상한 형상 자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신적 경험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경험은 본질에서 두려움이고, 엎드림이고, 충격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벗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일단 익숙한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책상, 컴퓨터, 커피, 가족, 교회 등등, 이런 익숙한 것들이 아닌 어떤 세계를 표상하고 경험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대상이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실도 절감해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익숙한 것에서만 삶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아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경험합니다. 인형과 대화할 줄 압니다. 이불 속의 어둠에서 어떤 존재의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으면서 완전히 익숙한 것들에 매달려 삽니다. 티브이 드라마와 홈쇼핑과 주식과 통장과 스마트폰에 매몰됩니다. 좋은 쪽으로는 가족과 친구에게 매몰됩니다. 죽은 자처럼 ‘인자 같은 이’ 앞에 엎드리는 경험이 없습니다. 이게 구원일까요? 참되고 영원한 삶일까요?
죽은 자 같이
내 평생에 '시신'을 직접 보기는 대여섯번정도 봤는데
아버지는 제가 너무 어려서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못보게 했었고
어머니는 입을 벌리고 한쪽발을 소파에 척 올린 상태로 너무나도 평안한 상태이셨고
또 한번은 가스에 취해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들춰업고 뛴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숨이 멎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숨이 멎은 상태에서 제가 업고 뛰었더군요.
그 트라우마로 상당해 오랫동안 밤엔 무서워서 밖에 못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정말 죽은자 같이 될까요? 그렇다면 어머님 처럼 세상에 태평하고 평안한
그런 죽은 자같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