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 (4월10일)

조회 수 4967 추천 수 32 2006.04.10 23:23:23
2006년 4월10일, 신발끈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 1:7)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요한의 고백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출 때 사용하는 그 당시의 관습적 용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의 신발끈을 풀려면 본인은 일단 허리를 구푸리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선을 신발에 두어야 합니다. 몸의 위치를 가장 낮은 곳에 두고, 시선을 아래로 깐다는 것은 극단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자신을 그렇게 낮춘 사람이었으며, 그런 방식으로 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마 톨스토이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반(半)지하에서 구둣방을 하는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창문을 통해서 그 앞으로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의 발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발에 신긴 구두를 보았다는 게 조금 더 사실에 가깝겠지요. 그는 그것만 보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낼 정도로 이웃의 발과 구두에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다음날 직접 찾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뒤의 줄거리는 여러분이 아실 테니까 그만 두겠습니다. 그가 낮에 만났던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의 발만 보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겸손하겠지요.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셨다는 겁니다. 아마 우리에게도 찾아오시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아닐는지요.
요한복음에(12:1-8) 따르면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삼백 데나리온이나 나가는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 12:7) 누가복음은 그 여자가 죄인이었다고 설명합니다.(눅 7:39)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평판이 아주 나쁜 여자가 점잖은 사람들이 모인 공개석상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울면서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는 게 해괴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는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예수님도 당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어느 날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기신 일이 있습니다. 요즘 고난주간에 세족식을 행하는 교회들이 있는 것 같더군요. 예수님처럼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겠다는 의미이겠지요. 비록 형식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이런 걸 통해서 낮춤의 영성이 풍성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발끈의 영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닌지 저는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자신을 땅처럼 낮춘다는 게 말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산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지금 내가 모든 일을 접어두고 치매노인들의 수발을 들어주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친구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그 이외에 다른 할 일이 많다고 자위할 수는 있겠지만, 이건 할 일이 있다 없다, 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영성의 차원입니다. 과연 내가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면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영성은 하루 이틀에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를 그렇게 지배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한 시선을 위로 두지 말고, 아래로 둔다면 언젠가는 남의 신발끈을 푸는 일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주님, 낮아짐의 영성을 배우기 원합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자신을 낮추신 주님만을 통해서만 그 일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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