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 새 포도주 (6)

조회 수 2574 추천 수 30 2006.10.03 23:22:39
2006년 10월3일 새 포도주 (6)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 2:22)

어제 어쩌다가 술 문제를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압축적으로 진술된 짧은 글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기 좋습니다. 아무래도 사족으로 몇 마디 더 붙여야겠군요. 저는 어제 술과 커피가 모두 기호식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술이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사양이지 신앙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술 먹고 술주정하고 추태를 부려도 좋다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지는 마세요. 사람은 말짱한 정신으로도 추태를 부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서울 시청 광장의 기도회에서, 영락교회 집회에서도 보았습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술과 커피를 냉정하게 따져보십시오. 무엇이 조금이라도 더 비윤리적인 식품일까요? 커피, 술?
커피의 원료는 대개가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생산됩니다.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몇 천원의 일당을 받고 일합니다. 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단순 노동자들의 땀이 거기에 배어 있습니다. 유명 브랜드 커피 판에서 얻어지는 거의 모든 이익은 초국가기업체에게 돌아가겠지요. 이런 커피를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아주 우아한 모습으로 마셔댑니다. 그러면서 술 마시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합니다. 조금 모양이 우습지요.
기독교 윤리에서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 윤리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선입견을 제거하고, 감정을 절제하고, 통시적으로, 신학적으로, 생명 지향적으로 인간의 삶을 해명하고 판단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신앙은 윤리 너머의(meta-ethics) 차원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기독교 신앙은 윤리적으로 드러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하지만, 윤리적 삶이 곧 기독교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레벨:4]New York

2006.10.04 10:56:28

질문과 답의 관계:

사랑하는 다비아 가족분들, 다비아를 안 지 얼마 안되었지만 많은, 정말 많은 도움과 힘을 얻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는 정목사님 그리고 많은 글과 덧 글을 올리는 가족 여러분께 미국에서 선물을 할 것은 없고 글 밖에 없네요. 그러면 주제로 넘어가는 글을 쓰겠습니다. 추석입니다.

성경은 물론 인생을 살다보면 질문이 참 많습니다. 결론들을 잘 내리는 것같지만 잘 결론을 내리면 내리는 책일수록 결론 자체가 잘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답을 못 갖는 질문들이 있지요.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사는 것이 무엇인가요?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 많은 답이 없다고 생각되는 질문이 있네요. 그런데 질문과 답의 관계가 그렀습니다. 우선은 질문의 답을 못 갖는 것은 자신의 질문 자체를 이해 못해서 그렇습니다. 바꾸어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답이 도착했을 때야 질문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학교 다녀봤지요? 즉,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지식을 얻는 길을 걸어보셨지요. 예를 들어 한 교실에서 새로운 지식을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합시다. 누가 먼저 질문을 먼저 합니까? 답을 그래도 먼저 많이 가까이 간 “똑똑한” 학생이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 학생에게는 이미 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이해하기 시작하기에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답이 온 학생은 그 답을 기존 이성과 논리 체계에 답을 정리할 수만 없을 뿐입니다. “언어”가 부족한 것뿐입니다. 고등교육은 그러한 언어를 소개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이 다른 책과 다른 것은 성경은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정목사님의 표현으로 하자면 은폐된 답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습니다. 그런데 언어가 부족해서 그것을 우리는 못 보는 것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정목사님 그리고 다비아 가족 여러분,
추석 잘 보내세요.

자신에 가려서 남이 남으로만 보입니까?

[레벨:0]서우정

2006.10.05 11:06:58

뉴욕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해보시죠 이해가 쉽지는 않지만 쪼끔은 이해될 것 같습니다.
자신에 가려서 남이 남으로만 보입니까? 란 질문이 담고 있는 답이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상호의존?
정목사님과 다비아 공동체도 좋은 명절 되십시오.

[레벨:4]New York

2006.10.05 21:02:33

서우정님은 토양이 좋아서 씨가 뿌려지면 자랄 분이라서 자라고 있는 분이라서 그렇습니다.
먼 얘기가 아닙니다.
서우정님 정도면 추천할 수 있는 도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두 권:
Richard Dawkins "The Selfish Gene" 한국에도 "이기적 유전자"로 번역본이 나와 있는 데 제가 본 바로는 한 번역본은 번역이 훌륭한데 책방에서 먼저 읽고 한 권을 선택하세요. 이 책은 토양이 좋은 분한테는 상당히 좋은 책인에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책입니다: 어느 정도의 독을 잘 쓰면 큰 병이 고쳐지는 것아시지요. 이 책은 그러 런 독입니다. 이 책을 읽고 그리스도 신자에서 진화론자로 바뀐 의사분도 알고 있으니까요. 이 사람이 이미 꽤 유명한 학자입니다. 그런데 아마 죽으면 "기존으로 따지면" 엄청나게 유명한 학자가 "돠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이 분과 한 번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데에 손자병법에 나와 있듯이 싸우지 않고 이길려니 별 수를 다 두네요.

물리학 책: "The Elegant Universe" by Brian Greene 현 콜럼비아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교수를 지내고 있는 분인 데 제가 check한 책 중에는 일반인을 위해서 쓴 물리학 책중에는 가장 와 닿습니다. 이 기회에 물리학에 대해서 잠깐 애기하겠습니다.

물리학은 "과정과학(Process Science)"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리학이 "일반적으로" 참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문으로 보면 가장 쉬운 학문이 물리학입니다. 그래서 과정 과학인 본리적인 이유와 더불어 가장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배우려면 제일 힘든 학문입니다. 너무 발달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세상에 발달되어 있는 의심을 깨기위해서는 필요하다면 필요한 학문이요. "증명"이라는 쌍스런 과정을 거쳐가야한다면 필요한 학문입니다.

이 시대의 특성은 근대의 특성은 "과학과 경제의 권위"입니다. 이 시대를 살기에 과학의 권위를 뛰어 넘으려면 과학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권위가 중세에는 교회에 있었지요. 권위가 무엇인가요. 따지기 전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권위입니다. 과학자가 과학적으로 말하면 맹목적으로 믿고, 부자가 말하면 맞는 소리일 것같고 그러함이 권위입니다.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다음을 잊지마세요.
왜 종교, 아니 기독교가 얼마나 과학적인가는 묻는 데 과학, 물리학이 얼마나 종교적인가, 기독교적인가는 우리는 묻지 않을까요?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에 과학자는 권위가 없었습니다.

천동설도 지동설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equal하게 맞는 얘기입니다. 믿기 힘들면 "가까운" 물리학자에게 물어보세요.

추석입니다.

곧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나타내고자하는 바는 이 곳이든 어떤 곳이든 나타날 것입니다.

[레벨:7]늘오늘

2006.10.05 14:04:49

풀벌레 소리를 들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 소리를 이곳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들려주시겠다고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신비는 온 땅에 가득합니다.

그나저나, N.Y.님의 글쓰기 ‘사랑채’에 하심이 어떨까요.
분량도 만만찮고, 묵상에 방해가 되어서요. ^^

[레벨:0]서우정

2006.10.08 08:32:58

풀벌레 소리...ㅎㅎㅎㅎ
늘오늘님의 말솜씨가 무섭습니다.
늘오늘님은 뉴욕님이 들었던 풀벌레 소리를 이미 아신다고 생각하시나요?
갑자기 늘오늘님이 말씀하시는 온 땅에 가득한 신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온 땅에 가득한 신비를 알고 있으신 분의 글이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어서....
풀벌레 소리!!!

[레벨:1]박상열

2006.10.08 10:08:30

뉴욕님의 풀벌레(?)소리가 궁금합니다.^^
이곳 혹은 사랑채에 계속 글을 올려주시길..

[레벨:7]늘오늘

2006.10.08 16:53:31

사랑채 ‘향연’이라는 글에 썼던,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던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깨달음’이란 그런 경험이 아닐까 생각했구요.
혼자 들음이 아깝고, 그것을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깝고,,,
그리고 나름, 환희심을 동반한 다양한 경험들도 떠올려 보았구요.

아!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구요?
그러나, 그런 경험 운운에, 마냥 맞장구치긴 어렵군요.
더구나 서툴고 교만한 억지스러움에는.
방언, 신유, 예언,,, 을 이어 이제는
깨달았다는 도사들의 짬뽕 지식과 방자함에 넌더리가 나니까요.

깨달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깨달은 자의 지위/능력이 올라가는 일인가요?
깨달은 자가 남다른 지식/능력을 확보했다는 말인가요?
깨달은 자는 남을 지도할 사명/능력이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소중한 보물을 발견했거든,
뜬 구름 잡는 서툴고 교만한 언사로 나대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열매/향기를 보여줄 일이지,
‘나를 따르라’ 웅변할 일이 아니잖습니까?

시적인 깨달음이라면 시로,
음악적인 깨달음이라면 음악으로,
인식론적인 깨달음이라면 철학으로,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라면 여여한 평화로움으로,
종교적인 깨달음이라면 찬양과 경배로,,, ^^

무엇보다 제발 메시아연하지 마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358 7월8일 오직 예수 [1] 2008-07-07 1774
1357 7월7일 그의 말을 들으라! [4] 2008-07-06 1745
1356 7월6일 내 사랑하는 아들! [5] 2008-07-05 2219
1355 7월5일 구름 속의 소리 [1] 2008-07-04 1661
1354 7월4일 제자들의 두려움 [5] 2008-07-03 1847
1353 7월3일 초막 셋 [5] 2008-07-02 3833
1352 7월2일 “여기” [2] 2008-07-01 1905
1351 7월1일 엘리야와 모세 [3] 2008-06-30 3204
1350 6월30일 광채 [4] 2008-06-29 2047
1349 6월29일 변화산에 올라 [2] 2008-06-28 1887
1348 6월28일 ‘어록’6-7 [2] 2008-06-27 1621
1347 6월27일 ‘어록’6-6 [1] 2008-06-26 1303
1346 6월26일 ‘어록’6-5 2008-06-25 1637
1345 6월25일 ‘어록’6-4 2008-06-24 1324
1344 6월24일 ‘어록’6-3 [3] 2008-06-23 2490
1343 6월23일 ‘어록’6-2 [2] 2008-06-22 1614
1342 6월22일 ‘어록’6-1 [3] 2008-06-21 1959
1341 6월21일 ‘어록’5-9 [4] 2008-06-21 1484
1340 6월20일 ‘어록’5-8 2008-06-19 1407
1339 6월19일 ‘어록’5-7 [4] 2008-06-18 1861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