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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월29일 두려움 (3)

  • 2007-03-29
  • 조회 수 1406

2007년 3월29일 두려움 (3)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뾰족한 방법은 없지만, 평소에 나름으로 준비를 한다면 극한 상황만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들리는 말로는 “죽음을 준비하는 모임”도 있다고 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똑같이 통과해야만 할 죽음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겠지요. 저의 경우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합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3월28일 두려움 (2) [7]

  • 2007-03-28
  • 조회 수 1392

2007년 3월28일 두려움 (2)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십여 년 전쯤인가, 저와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던 후배 목사가 있었습니다. 성격도 좋고, 체격도 건장하고 잘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간암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6개월 시한부를 선고했습니다. 병문안을 갔더니 본인은 믿음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더군요. 신유집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가족과 교회 식구들이 집중적으로 기도를 했지만 결국 죽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고 하면 어떨까...

3월27일 두려움 (1) [2]

  • 2007-03-27
  • 조회 수 1403

2007년 3월27일 두려움 (1)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 4:40) 풍랑과 파도가 수그러든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가 하고 나무라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을 책망하신 건지 아니면 연민의 정을 그렇게 표현하신 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제자들이 풍랑 앞에서 두려워한 행동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실 제자들의 이런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38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실제...

3월26일 잠잠하라. [1]

  • 2007-03-26
  • 조회 수 1223

2007년 3월26일 잠잠하라.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잠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은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힘을 완전히 제압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이 세상의 악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힘을 잃었습니다. 그 어떤 악한 세력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위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악이 준동하고 있으니까...

3월25일 잔잔해진 바람

  • 2007-03-25
  • 조회 수 1404

2007년 3월25일 잔잔해진 바람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어제 쓴 묵상을 읽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광풍을 제어한 게 아니라 제자들이 그렇게 인식했을 뿐이라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게 성서읽기에서 매우 어려운 대목입니다. 성서 시대에는 아주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오늘의 독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들이 성서에 많습니다. 홍해가 갈라졌...

3월24일 바람을 꾸짖다!

  • 2007-03-24
  • 조회 수 1578

2007년 3월24일 바람을 꾸짖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오늘 본문을 정직하게 읽는다면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연현상까지 굴복시키는 일이 예수님에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그런 일들은 주로 마술사들이 하는 겁니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그건 그가 직접 바람을 일으킨 게 아니라 과학적 통계를 통해서 그 시각에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뿐이었...

3월23일 제자들의 호들갑

  • 2007-03-23
  • 조회 수 1323

2007년 3월23일 제자들의 호들갑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8) 제자들은 졸고 계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선생님, 위험하니 먼저 피하십시오,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왜 모른 척 하십니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늘 자신들에만 관심을 두고 있군요. 그건 그렇고, 제자들 중에는 전업 어부들이 많았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왕년에 갈릴리 호수를 주름잡던 제자들은 그런 풍랑을 자주 경험했을 겁...

3월22일 잠든 예수

  • 2007-03-22
  • 조회 수 1431

2007년 3월22일 잠든 예수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7) 갈릴리 호수를 항해하고 있는 배 안에서 예수님이 졸았다고 합니다. 왜 졸았을까요? 피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가장 적절한 대답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피고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긴장해 있으려고 해도 그게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제자들도 졸았습니다. 그 순간에 그 유명한 예수님의 경구가 나...

3월21일 광풍

  • 2007-03-21
  • 조회 수 1356

2007년 3월21일 광풍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막 4:37) 갈릴리 호수에 광풍이 일었습니다. 파도에 배가 흔들리고, 물이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위급상황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영적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일종의 항해라 할 우리의 인생은 광풍과 파도의 위기에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인생을 살기를 바라겠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위기는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광풍을 감수해야만 합...

3월20일 배를 타고 [7]

  • 2007-03-20
  • 조회 수 1591

2007년 3월20일 배를 타고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막 4:36) 오늘 본문의 장면도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군중들로부터 벗어나서 예수님을 배에 있는 그대로 모시고 갔다고 합니다. 4장1절에 따르면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몰려들어 배에 올라가셔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상태로 계속 계셨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이 배에 올라가서 가르치셔야 했다면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는 말인데, ...

3월19일 해저물녘 (2)

  • 2007-03-19
  • 조회 수 1298

2007년 3월19일 해저물녘 (2)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 4:35) 해저물녘은 낮과 밤의 경계선입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저는 젊었을 때 황혼 시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도 간혹 혼자서 논밭길이나 숲속 길을 황혼 시간에 걸었습니다. 그 느낌은 정말 이상했습니다. 환하게 제 빛을 내던 나무, 시냇물, 돌, 언덕, 초가집이 황혼을 받아 붉은빛으로 변하다가 차츰 흔적을 감추는 장면에서 저는 제가 마치 동화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제...

3월18일 해저물녘 (1)

  • 2007-03-18
  • 조회 수 1391

2007년 3월18일 해저물녘 (1)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막 4:35) 35절 말씀부터 그 유명한 예수님의 풍랑 제어사건이 시작됩니다.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신 예수님은 풍랑이 일어 제자들이 야단법석을 치는 동안에 뱃머리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성화에 잠을 깨신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시자 바람이 멎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도대체 이 사건이 무엇일까요? 천천히 그 사태 안으로 발을 들여놓도록 합시다. 예수님...

3월17일 해석 (8) [3]

  • 2007-03-17
  • 조회 수 1389

2007년 3월17일 해석 (8)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우리가 여러 번에 걸쳐서 나눈 묵상의 제목인 ‘해석’은 성서읽기와 신학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영성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성의 기초는 해석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영성을 단지 고행이나 극기, 또는 도덕적인 성취를 통해서 얻어지는 어떤 초월적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도 어떤 종...

3월16일 해석 (7) [1]

  • 2007-03-16
  • 조회 수 1165

2007년 3월16일 해석 (7)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어제의 바르트에 이어 오늘은 판넨베르크의 설교 “와서 보시오!”(요 1:45-51) 중에서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학자의 영성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거울로 보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고후 3:18). 여기서 우리는 대상을 대충 반사시켜내는 고대의 동(銅)거울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습...

3월15일 해석 (6) [4]

  • 2007-03-15
  • 조회 수 1548

2007년 3월15일 해석 (6)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설교는 곧 성서텍스트의 해석입니다. 성서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새로운 영적 세계를 엽니다. 이런 점에서 설교는 성서텍스트와 설교자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양자 사이에 어떤 깊이에서 대화가 일어나는가에 따라서 설교의 깊이로 달라 질 겁니다. 만약 교회부흥만 생각하는 설교자라고 한다면 성서텍스트와 그런 이야기만 하겠지요. 오늘 저는 칼 바르트의 설교 ...

3월14일 해석 (5)

  • 2007-03-14
  • 조회 수 1409

2007년 3월14일 해석 (5)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다음과 같은 시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책상 위에서 연필이 구른다 거기 소리가 있다네 거기 우주가 있네 거기 빛이. 그냥 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겁니다. 어쨌든지 그런 문장이 우리 앞에 있다고 합시다. 그걸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며칠 전에 실제로 저는 연필을 손에서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다. 연필이 때구르 하고 소리를 내며 굴러가더군요. 그날따라 그 소리가 왜 그렇게...

3월13일 해석 (4) [1]

  • 2007-03-13
  • 조회 수 1350

2007년 3월13일 해석 (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그렇다면 해석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나요? 다른 게 아닙니다. 성서텍스트의 중심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서가 가리키고 있는 그 핵심 안으로 치고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성서텍스트 자체를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간혹 탈신화화라는 명분으로 성서를 유치한 문서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유의 책들이 그...

3월12일 해석 (3) [2]

  • 2007-03-12
  • 조회 수 1408

2007년 3월12일 해석 (3)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해석했다는 본문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5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님은 비유만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도 해석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는 게 옳지만(레 19:18)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은 틀린 걸까요? 아닙니다. 구약은 그 당시의 상황...

3월11일 해석 (2)

  • 2007-03-11
  • 조회 수 1387

2007년 3월11일 해석 (2)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해석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먼 훗날, 한 5백년 쯤 후에 어떤 사람이 ‘다비아’ 사이트에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때까지 다비아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가정하구요. 그는 다비아의 성격을 모두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다비아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지, 그리고 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힘듭니다. 숨어 있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은 기본적으로 구약의 예언자들...

3월10일 해석 (1)

  • 2007-03-10
  • 조회 수 1311

2007년 3월10일 해석 (1)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4) 34절 말씀으로 마가복음의 비유 시리즈는 끝납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양이 적습니다. 마가복음 자체의 길이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짧은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마가복음이 예수님의 행위를 중심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마가는 비유 시리즈를 끝내면서 예수님이 혼자 계실 때에 그것을 제자들에게 ‘해석’했다고 진술합니다. 어떤 가르침에서 해석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비밀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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