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조회 수 3804 추천 수 11 2006.05.22 23:31:21
2006년 5월22일 “나를 따라오라!”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예수님은 왜 시몬 형제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본문은 그 대답을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썩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고기를 낚는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일 텐데, 번역자들이 그걸 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할 길이 없었나 봅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적용된 용어니까 우리가 굳이 다른 단어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겠지만, 자칫 그리스도교의 복음과 선교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제반의 문제들이 이런 용어로 인해 방향을 잃을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에는 그 대상을 도구로 간주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소위 ‘세상 사람들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교회로 끌어들이는 일들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품을 내걸고 사람들을 낚으려고 합니다. 또는 기상천외한 조직을 통해서도 그런 작업을 펼칩니다. 약간 심하게 예를 들자면, 시내 번화가 술집에 고용된 삐끼들이 손님들을 끌어들이듯이 우리는 설치고 있습니다.
복음 전도는 열정적으로 펼칠수록 좋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시겠지요. 원칙적으로는 복음전도는 필요니다. 그러나 무엇이 복음 전도인지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시몬 형제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 자체가 곧 복음 전도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말씀이 예수님의 친언인지, 혹은 마가 공동체의 해석인지는 더 많은 역사 비평이 필요하니까 접어두기로 하고, 설령 예수님의 친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근거해서 현재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전도 방식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몇몇 이상한 전도 방법만을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도구화하려는 그런 발상 자체가 그리스도교와 너무 거리가 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 자체가 존재론적으로 사람을 낚는 일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거나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 존재하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억지로 세상 사람들을 소금을 만들거나 빛으로 만들려고 지나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존재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구요? 좀 역설적인 말이지만, 선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복음 전도의 책임을 피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 능력이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대목에서 사도 바울을 앞에 내세우겠지요. 옳습니다.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우리와 같은 마음과 방법으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선교지역에 들어간 일이 없으며, 자비량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오직 십자가와 부활에만 마음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지금 우리에게는 복음전도 마저 종교적 업적과 만족감의 수단이 되어버린 건 아닐는지요.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을 아전인수로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일에 나서기 전에 우선 제자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복음 전도는 없습니다.

주님, 주님을 바르게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레벨:8]김인범

2006.05.23 10:08:46

아,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오늘 우리들의 전도가 너무 방법에 매달려 있고
한탕주의적 색깔마저 띠고 있음에
그야말로 예수 바겐세일을 하는 것 같은 모습들이
전도왕이니 하는 모습들에서 어떤 땐 섬짓한 느낌마져 들었는데
근데 왜 주님의 이 말씀을 그렇게 한번 생각하지를 못했는지
이 말씀은 그냥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깊이 생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소금으로 존재하는 것,
빛답게 사는 모습 자체가 전도요 사람낚는 모습이어야 함을
강조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런 분위기에 자꾸 쓸려 들어가는 느낌
주님을 따르는 삶이 곧 사람 낚는 모습인데....

중요한 깨우침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레벨:1]똑소리

2006.09.18 14:30:31

한국교회의 물불안가리는 전도방식이 평소에 문제가 많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잘 짚어주셨네요. 한국교회의 전투적이고 저돌적인 전도방식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누가복음의 성서구절이 뒷받침되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런 점에서 위의 구절을 어떻게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목사님께서 한번 더 코멘트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성서연구" <누가복음>방에 있을까 싶어 확인해 보니
하필이면 누가복음 14장은 아예 보이지 않는군요. 건너 뛴 건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9.18 23:31:55

주인이 종에게 운운은 교회와 선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긴급성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거든요.
이것도 중요한 문제인데,
다음 기회를....
누가복음 공부는 차례대로 하는 게 아니라
옛날에 공부한 <누가복음의 인물>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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