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7일- 세관에 앉은 사람 (1)

조회 수 2717 추천 수 26 2006.08.27 23:17:38
2006년 8월27일 세관에 앉은 사람 (1)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 2:14)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든 제자들은 아니고 다섯 명이 그 대상입니다. 베드로 형제, 야고보 형제, 그리고 레위입니다. 앞의 네 사람은 어부였고,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 레위는 알패오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의 목록인 마가복음 3:18절에 따르면 알패오의 아들은 야고보입니다. 어느 구절이 옳은가요? 알패오의 아들은 레위인가요, 야고보인가요? 또한 오늘 본문과 병행구인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로 부른 세리를 마태라고 이름하며, 누가복음은 마가복음과 똑같이 레위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조금 복잡합니다. 일반적으로 레위와 마태를 동일인으로 보는 게 옳습니다.
여기서 조금 궁금한 게 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어부와 세리 이외의 제자들이 부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왜 별 말이 없을까요? 그들 중에는 열심당원도 있었고, 나름으로 민족의식이 강한 사람, 그리고 지성인도 있었습니다. 각각의 모든 제자들이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었을 텐데, 복음서는 이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에 제자들에 관한 전승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들의 역할이 별로 크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요즘은 우리가 “열두 제자”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들을 그리스도교의 매우 중요한 인물도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는 열두 제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자체가 매우 불확실했습니다. 예수님이 매우 분명한 목표를 갖고 십자가를 졌다거나 제자들을 삼았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낭만적인, 또는 결과론적인 발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 인식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 의해서도 어떤 실증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정확하겠군요. 예수 사건은 이스라엘의 예언자 역사에서 일어난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해프닝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아주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기억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열두 제자들에 관한 전승도 그렇게 정확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위의 설명으로 생각이 더 복잡해진 분들이 있겠군요. 특히 예수 사건이 해프닝이었다는 말을 아주 불쾌하게 생각할 분들이 없지 않겠네요. 먼저 이렇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서 크게 불안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신앙의 깊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역사에 등장한 게 우연이라는 사태의 깊이로 들어가야만 우리는 역사의 신비를 느낄 수 있고, 또한 그럴 때만 하나님의 통치를 조금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위에서 사용한 해프닝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사소한 일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인류 역사를 결정하는 사건으로 지양(止揚, Aufhebung))되었다는 뜻입니다. 역사의 신비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사건이 결정적인 사건으로 지양되는, 즉 올리어지는 그 내면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 영역입니다.
오늘 본문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 날은 그에게 다른 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그렇고 그런 하루였습니다. 아침을 먹었습니다. 어젯밤에 술 한 잔 했으면 조금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아침에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세관으로 출근했을 겁니다. 차를 마시며 동료들과 함께 그날 처리해야 할 업무를 의논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아주 평범한 어떤 날에 그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역사는 우연한 방식으로 사소한 일상을 우주론적 사건으로 만듭니다.

주님, 당신이 우리의 내면세계에 찾아오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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