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나병환자

조회 수 3861 추천 수 29 2006.07.03 23:31:48
2006년 7월3일 나병환자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막 1:40)

우리는 마가복음 기자가 40-15절에서 보도한 나병환자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도움을 청했고, 예수님은 그를 고치시고 유대교의 규례에 따라서 제사장에게 보냈습니다. 그 사람이 제사장에게 실제로 갔는지에 대해서 본문은 말이 없고, 대신 나병환자였던 사람이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당분간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복음의 실체에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부터 시작합시다.
여기 예수에게 와서 꿇어 엎드린 이 나병환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그 지역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셨다는 앞 단락과 이 사건 뒤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는 뒤 단락을 참고한다면, 이 지역은 가버나움에 가까운 어느 한 동네일 것 같습니다. 또한 나병환자들이 동네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걸 전제한다면 가버나움 근처의 어느 외딴 곳이었겠지요. 성서 기자에게는 그 지명이 아니라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 나병환자가 실제로 나병에 걸린 것인지는 그렇게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사람들은 실제 나병과 심한 피부질환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고칠 수 없는 모든 악성 피부질환은 일괄적으로 나병으로 불렸을 겁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병환자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그런 운명에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도 헤어져야 하고, 먹고 살 길도 막막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동네와 뚝 떨어진 곳에서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먹거리를 얻어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는 매일 썩어가는 자기의 살덩이를 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밤하늘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지만 이 사람에게는 무의미했겠지요. 그가 흘린 눈물은 강을 이루고, 그가 내쉰 한숨은 폭풍을 이룰 정도였겠지요. 천형(天刑)을 저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요?
이 세상에 닥치는 이유 없는 고난을 보면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분에게 정의와 사랑이 있다면, 더구나 그분이 전능하다면 이런 고난을 내버려둘 리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소위 신정론(神正論)에 관한 이런 주제는 우리 인식의 한계를 넘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도 아직 만족할만한 대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이 여전히 우리에게 비밀이듯이 이유 없는 고난의 문제는 그런 비밀 중의 하나도 남겨두는 게 지혜로울 것 같습니다.
대신 우리는 이런 고난과 맞서 싸우는 일에 서로 연대할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 방법은 제가 모를 뿐만 아니라 안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제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상식적인 차원에서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세금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국방비의 10%만 장애인 복지 사업으로 돌릴 수만 있더라도 많은 이들의 형편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남북분단 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화하는 것은 단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 엎드려서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있나이다.” 표현이 아주 완곡합니다. 직접적으로 “나를 고쳐주세요.”하지 않았네요. 왜 그랬는지는 여기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표현이든지 완곡한 표현이었든지 여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의 절절한 사연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런 호소는 오늘도 여전합니다.

주님, 주변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살기 원합니다. 아멘.  

[레벨:7]늘오늘

2006.07.04 01:12:07

가난하고 주리고 애통하고 핍박받는 자
그들과 만나시는 예수
예수의 길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울지 않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그는 예수를 알아보았군요.

바우로

2006.07.04 15:38:18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는 나병환자는 정말 겸손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보통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때, "이거해 주세요,저거해 주세요"라고 하지, 하느님의 뜻을 구하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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