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164)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실 요 8:1-11절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사본에는 이 대목이 나오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7:53-8:11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말 성경과 루터 번역 독일어 성경에는 이 대목이 큰 괄호 안에 들어있다. 쿠어드 아랜드(Kurt Aland) 4인이 편집한 헬라어 성경 <THE GREEK NEW TESTMENT>에는 이 대목이 아예 빠졌다.

8:12절부터 다시 예수의 연설이라는 요한복음의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분명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나는 ... 이다.’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인데, 영어로 ‘I am’이다. 그 문장을 헬라어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에고 에이미 토 포스 투 코스모스.” 나는 세상의 빛이다. 6:35절에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했고, 10:7절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했다. 이런 일련의 표현이 요한복음에 흔하게 나온다.

예수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이나 생명이라는 말이나 양의 문이라는 말은 같은 의미이다. 예수를 통해서 구원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이를 가리켜 본문은 세상의 빛인 예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관념적이다. 예수를 따라도, 즉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아프고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간혹 양심에 거리낌을 느끼고, 절망하고, 허무에 떨어지고, 그리고 죽는다. 예수는 어떤 근거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빛인가?

빛의 반대 개념은 어둠이다. 우리의 인생이 일단 어둠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무리 많은 목표를 성취해도 참된 만족을 모른다. 왜 참된 만족을 모르는지조차도 모른다. 정신 수양이 높은 사람들은 공수래공수거 수준에 도달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참된 만족을 얻는 건 아니다. 그들은 인생의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에 일정한 부분에서 자유를 얻을 뿐이다. 이런 대목에서는 불교나 노장 유의 가르침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로마 시절에도 그런 스승들은 많았을 것이다.

기독교는 어둠을 직시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빛을 찾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다가온 빛을 받아들인다. 삶의 음지에서 양지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생명의 빛으로 경험했다는 뜻이다. 빛을 경험했기에 어둠의 정체를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이런 신앙의 중심에는 예수 부활 경험이 자리한다. 부활 경험은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무덤에 묻혔던 예수를 살아있는 자로 경험한 것이다. 이 경험을 요한복음 기자는 생명의 빛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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