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8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새 예루살렘인 거룩한 성에 대한 설명이 약간 복잡해집니다. 묵시적 상상력에서 표상된 그림같이 멋진 성입니다.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만한 모습입니다. 크고 높은 성곽에 열두 문이 있다고 합니다. 성곽은 성벽을 가리킵니다. 열두 개는 많기는 합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성을 들락거리는 성문은 숫자가 적을수록 좋습니다. 관리하기에 편하거든요. 정문이 하나 있고, 비상문이 하나 있으면 충분합니다. 요한은 상징적인 의미로 열두 개를 생각한 겁니다. 각각의 문에는 천사가 있고 문 위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계 7장에도 이미 언급되었습니다. 그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이마에 도장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십사만사천 명이었습니다. 그 숫자는 열두 지파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이 선정된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두 지파는 물론 하나님께 새롭게 선택받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거룩한 성을 드나들 수 있는 고유한 문이 배정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거룩한 성에서 주인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있을까요? 그런 자유에 조금씩이라도 가까이 가고 있을까요?
언뜻 자유만 생각하면 누리면 그 뿐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아직 세상속에서는 하나님께 새롭게 선택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활절 설교에서의 여인들의 경험처럼 낯섦의 경험, 절대 타자의 경험은
세상으로부터의 유기를 경험하게 하기에 자유로움보다는 두려움으로 자리매김 하기도 합니다.
언제쯤 하늘 나라의 원리를 실감? 하면서 살 수 있을지...
죽음을 종말을 기다림의 차원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볼까 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1. 열두 문: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
2. 성곽의 열두 기초: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
그렇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에는 율법으로 하나님이 택한 선민 이스라엘과 은혜로 구원받은 신약의 교회가 모두 있다는 뜻이므로 이 구절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아니라 구약의 이스라엘이 혹시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