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6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은 같은 의미를 세 가지 변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미 계 1:8, 17, 그리고 2:8과 21:6절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습니다. ‘시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ἀρχὴ(아르케)입니다. 아르케는 요 1:1절에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태초는 한자이고 시작은 순수 우리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번역한 사람과 요한계시록을 번역한 사람이 달라서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표상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이 알파와 오메가, 또는 태초와 종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태초는 물리학 용어로 빅뱅입니다. 물리학계에서는 빅뱅이 138억 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태양과 지구는 45억 년쯤 되었겠지요.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빅뱅이 발생하여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힘들고 믿기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물리학은 빅뱅 이후의 우주를 말할 뿐입니다. 성경의 역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우주 물리학을 알지 못했는데도, 자연은 본래 그렇게 존재했다고 생각한 그리스 철학자들과 달리 지구를 비롯한 우주가 시작한 시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존재의 신비를 따라가다가 그런 대답을 찾았을 수도 있습니다. 존재의 신비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돌은 존재하는데 돌과 물의 중간쯤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은 결국에 사라집니다. 있음과 없음은 비밀입니다. 인간도 생생하게 살아있다가 늙어서 죽고, 그 시체마저 흙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지구도 역시 언젠가 시작된 시점이 있고, 사라질 시점이 있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이런 존재의 신비 앞에서 알파이고 오메가이신, 그리고 빅뱅이며 그 빅뱅의 끝이신,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거나 무로 돌아가게 하는 궁극적인 분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이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이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통해서 더 깊어지면서 삼위일체 하나님 표상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보면 안 될까요?
저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는 선언이 단순히 종교적 독단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보편적(universal) 학문을 향해서 설득력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신학적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르트 문장으로 바꾸면 Gott ist Gott!, 즉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이런 명제가 보편적 정당성을 얻게 하는 일이 바로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겠지요. 그런 과업의 수행에 근거해서 설교와 목회의 방향도 잡혀야 하는 거고요. 개인적인 운명에서 말하면 하나님은 제가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숨을 허락하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숨을 거둬가는 분이십니다. 저의 시작과 마지막은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이 선하시다면 저의 시작과 마지막도 다 선하겠지요.
1. 장자는 무유(無有)라는 표현을 쓰고
다석 유영모는 '없이 계신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2. 빅뱅 이전에도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우리 우주 밖 11차원에서 빅뱅으로 우리와 같은 4차원 우주를 수없이 창조하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