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9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제 주어가 ‘예수’로 나오는 문장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주어가 천사, 요한, 예수, 이렇게 종종 바뀝니다. 여기서 언급된 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가리킵니다. 2-3장에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2:12절에서도 설명했듯이 교회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용어가 아니라 그리스-로마 정치 용어였습니다. 영주가 여러 지역 책임자들을 소집하는 업무와 모이는 과정을 가리켜서 에클레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교회가 그 정치 용어를 끌어왔다는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조직이나 체계가 아니라 믿는 자들의 ‘모임’에 두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의 ‘모이는’ 공동체라는 사실이 바로 교회의 전통적인 의미입니다. 두세 사람이 모여도 거기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진행된다면 교회입니다. 오늘날은 그런 동적인 성격이 약화하고 정적인 조직체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졌습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건물이 모임을 압도합니다.
요한은 예수의 자기규정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계 5:5 참조)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문장만으로는 예수께서 다윗을 뿌리로 하는 후손이라는 뜻인지 거꾸로 다윗의 뿌리가 예수라는 뜻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라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은 분명히 다윗의 후손이나 예수께서는 ‘태초에 로고스로 존재하셨다.’(요 1:1)라는 말씀에 따르면 다윗이 오히려 예수님을 뿌리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역사적 근거를 명확히 붙들고 있었다는 것은 역사를 등한히 여기는 영지주의의 유혹을 거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영지주의는 영육 이원론에 기울어져서 예수의 역사적 근거를 크게 훼손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는 실제로 삶을 산 게 아니라 그림자로 나타났다는 가현설(Docetism)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의 신성을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광명한 ‘새벽별’은 고대 근동에서 통치권의 표징이었다고 합니다.(민 24:17 참조)
다윗의 뿌리요 자손
신성의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이시오 근원이시며
인성의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시오 후손이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로서 주님이시며
동시에 다윗의 자손으로서 다윗에게서 난 순이시다(마 22:42-45, 롬 1:3, 렘 23:5).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