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16

조회 수 1082 추천 수 0 2024.04.08 21:41:1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72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거룩한 성에 대한 묘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위 16절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봅시다. 거룩한 성은 정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 모양의 탑입니다.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각각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1스다디온은 192m라고 하니(14:20) 자그마치 각각의 길이가 2,304km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저런 크기의 성 앞에서는 높이가 대략 8.8km인 에베레스트산이 앞동산보다 낮게 느껴지니까 거룩한 성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겁니다. 실제로 저런 크기의 성이 지구에 만들어진다면 지구의 기울기나 자전 및 공전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참고로 지구의 지름은 12,742km입니다. 요한은 지금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압도적인 형태의 성을 묘사하려고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는군요. 혹시 모르지요. 실제로 이런 성이 혜성 등등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겠지요.


[레벨:10]소유와존재

2024.04.09 14:08:47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하는군요.."


빌라도가 예수를 향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했을 때

예수의 (생명의)왕되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듯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종말의 생명을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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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09 20:53:03

상상력과 망상이 종이 한장 차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성경이 말하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거룩한 상상력을 이해하고 경험해야만

상상력과 망상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레벨:24]브니엘남

2024.04.16 06:40:55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라고 말하는 것은 새예루살렘이 <지성소>라는 것을 의미한다(출 26:2-8, 왕상 6:20)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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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16 21:47:11

브니엘남 님의 독특한 해석인지, 어디서 인용한 건지 모르겠으나

새예루살렘과 지성소를 연관짓는 건 비약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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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좋은나무

2024.04.17 13:37:04

브니엘남께서 말씀하신 해석이.... 요즘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이 얘기하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성경전체를 창세기~계시록까지 "성전"모티프로 보고자 하는 것인데, 새물결플러스에서 출간된 그레고리빌의 "성전신학"에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실제 지성소의 정육면체와 연결지어, 에덴이 원래 성전의 지성소였는데, 타락으로 인해 지성소로 출입할 수 없게 되었다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 아직 아니" 차원에서 지성소로의 접근이 예수를 통해 회복되었고 종말에야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성전신학을 한 학기 배웠던 적이 있어서 이렇게 댓글로 말씀을 드립니다. 영미권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대표적으로 톰라이트, 그레고리빌) 요즘 성경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꽤 설득력있는 해석으로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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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17 20:42:58

그렇군요. 좋은나무 님이 링크해 놓은 책 소개도 읽어보았습니다.

재미있군요. 나는 성전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생각하는데

버젓이 '성전신학'이라는 표제로 책이 나왔고,

유수의 한국 성서신학자들에게 격찬을 받았네요.

책을 직접 잃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할 거는 없고,

다만 구약의 지성소를 계시록이 말하는 새 예루살렘과 연결하여

예표론적으로 해석하는 거는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적절한 책 소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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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좋은나무

2024.04.17 22:08:32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성전신학이..... 예표론이 좀 강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성서신학자들이 성경을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메타내러티브) 서사로 보는, 즉 창세기~계시록까지를 하나의 책으로, 거시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세상의 서사를 전복시킬 수 있는 대안서사가 성서 내러티브 안에 있다는 강한 확신이 성전신학과 같은 관점을 붙들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성서를 너무 거시적으로 보게 하는 관점과 예표론때문에 개별 텍스트와 씨름하면서 설교를 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입니다!

[레벨:7]제통

2024.04.18 08:45:00

저도 일전에 읽었던 책입니다. 솔직히 마치 무슨 암호해독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성서해석이 예표론이나 어떤 비밀을 푸는 방식으로 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레벨:24]브니엘남

2024.04.18 18:23:29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온 성경 해석방법은 4중적 의미의 해석이다. 기독교 초기 교부 시대 3대 학파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겐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근거하여, 인간이 육과 영과 혼으로 되어 있듯이, 성경에도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 본문에 대해 ‘몸’은 문자적 의미, ‘혼’은 도덕적 의미, ‘영’은 풍유적(영적) 의미를 찾는다고 하며, ① 문자적, ② 도덕적, ③ 우의적 해석을 강조한 것인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여기에 ’영적(신비적)‘의미를 더하여, 4중적 의미의 해석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4중적 의미의 성경 해석은 중세기를 거쳐 현재까지 성경 해석의 중요한 해석 체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4중적 의미의 해석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배척을 당했던 성경 해석이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전통적 해석방법으로 전해져 내려온 4중적 의미의 해석을 배척하고, 안디옥 학파의 역사적 해석 방법론을 토대로,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5가지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이 모두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에도 차원이 있듯이 진리에도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진리, 즉 실재는 문자적, 도덕적, 우의적, 영적(신비적), 역사적 해석의 모든 것에도 일점일획이라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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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막 1:1), 3월20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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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20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 <하나님의 아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술로부터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우리를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하게 만듭니다. 우선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성서의 하나님이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하는 헬라 신화의 여러 신들처럼 자식을 두었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주간일지 11월8일 fil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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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0년 11월8일, 창조절 10주 1) 춤 이야기- 교회 주간일지를 설교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건 설교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서, 아니 일상까지 포함한 모든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무런 공명도 일어나지 않거나 실제 내용은 없으면서 설교자가 경건한 포즈만 취한 설교를 한다면 마지막 심판 자리에서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이번 설교 본문인 마 25:1-13절에 나오는 열 명의 젊은 여자들은 혼인 잔치를 빛낼 춤꾼들입니다. ...

원당일기(88)- 맨발 걷기 fil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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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포근했습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기온이라서 그런 거 같습니다. 오후에 마당에 나가서 아주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지나가는 누군가 봤으면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성을 기울여 주보 초고를 완성하고 잠시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잔디를 비추는 햇살을 보자 어린아이처럼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신발을 신기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문명과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다큐로 찍힐 때 가장 궁금한 ...

능력이란 무엇인가? (4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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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9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 1:7) 능력이란 무엇인가?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역사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그의 모든 가르침과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언급합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예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즉 자기 능력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 설교 [2]

  • 201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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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나는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예배 식으로 진행되지만 예배는 아니다. 결혼 예식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때 할 설교, 또는 주례사의 요약은 아래와 같다. 설교, 엡 4:13-16, 어른이 된다는 것 1) 결혼을 독일어로 Hochzeit라고 한다. 절정의 순간이라는 뜻이다. 왜 절정인가? 젊음, 어른, 짝, 사랑과 성, 전혀 다른 삶의 시작... 2) 결혼 이후는 현실이 기다린다. 결혼 자체보다도 이 현실이 더 중요하다. 이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내고 투쟁이다. 3) 어떻게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하는지...

팔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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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나니...’라는 시적 운율로 시작되는 복 있는 사람의 목록이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2) 애통하는 자, 3) 온유한 자,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5) 긍휼히 여기는 자, 6) 마음이 청결한 자, 7) 화평하게 하는 자,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이게 3절부터 차례대로 10절까지 기록되어 있다. 11절에도 복이 언급되긴 한다. 그러나 그것은 팔복의 총괄에 속하지 따로 분리된 복이 아니다. 이 팔복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이렇게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태복음만 전한다는 게 이상하긴 ...

갈릴리 나사렛, 4월13일 [1]

  • 2006-04-13
  • 조회 수 6709

2006년 4월13일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9) 갈릴리 나사렛 마가는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단강으로 왔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고향이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라는 뜻이겠지요.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을 총칭하는 이름입니다. 중부 지역은 사마리아, 남부는 유대입니다. 유대는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지역이고, 사마리아는 혈통적으로 순수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지역이며, 갈릴리는 비록 유대민족이라는 ...

송구영신 기도 [8]

  • 2013-12-31
  • 조회 수 6684

2013년 12월31일 밤, 오늘 송구영신예배 때 공동으로 바칠 기도문입니다. 중간에 어거스틴 기도문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기도문을 올리고 천천히 교회로 가봐야겠네요. 다비안 여러분과 일년 동안 행복했습니다. 이모저모로 참여해주신 분들께, 눈팅 다비안들을 포함해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에 뵙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태초와 종말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 해를 보내고 다시 한 해를 맞는 이 시간에 샘터 공동체에 속한 믿음의 식구들이 하나의 세례, 하나의 희망 안에서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4]

  • 201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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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1일(목) 어제 저는 WCC 부산 10차 총회 개회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 순서의 하나인 신앙고백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드려지더군요. 이 신조는 동방 서방 모든 교회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샘터교회는 매월 첫 주일에 성찬예식을 하면서 신앙고백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드리는 까닭에 이번 총회의 예배가 더 반가웠습니다. 번역이 매끄럽게 되었더군요. 그래서 이번 주 샘터교회도 이번 총회 예배에서 사용된 번역문을 따르려고 합니다. 중심 내용은 원래의 것과 비슷합니다. 단 하나의 차이가 있는데, 성령에 대...

원당일기(97)- 강독 file [2]

  • 2020-10-29
  • 조회 수 6608

시골이나 도시나 우리 모두 지구에서 산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대도시에 살아도 정신이나 정서나 심리에서 빈곤할 수 있고, 촌에 살아도 풍성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대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책읽기’는 중요합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으로서 저 자신의 공부이기도 하고, 회원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뜻으로 꾸준하게 강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행한 강독의 분량도 상당합니다. 유튜브를 사용하게 된 이후로는 이 작업이 간편해졌습...

물과 포도주, 요한복음 묵상(18) [9]

  • 2013-05-15
  • 조회 수 6586

요 2:1-11절에는 예수가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일단 본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 사실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없다. 그렇게 추정될 수 있을 뿐이다. 예수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한 다음에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연회장은 원래 물이었던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칭찬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일반적인 기적은 예수의 어떤 행위가 병행된다. 기도를 한다거나 몸에 손을 댄다.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예수는 축사를 했다. 그런데 포도주 사건에서는 아무런 언행이 없었다. 물을 포도주...

별을 보다, 4월8일(월) [9] [1]

  • 2013-04-08
  • 조회 수 6577

조금 전 마당에 나가 밤하늘을 보았다. 동네 가로등으로 지장을 받았지만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을 볼 수 있었다. 최소한 수 광년, 또는 수 십 광년 멀리 떨어진 우주 공간 어디선가 빛을 내고 있는 저 불덩어리들인 별을 볼 때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아득해진다. 별들이 저기 있는 게 아니라 별들 속에 내가 있다. 저 별 무더기 중의 하나가 바로 태양 아니던가. 요즘 북두칠성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자리하고 있다. 불두칠성은 실체가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우주 공간 어디 다른 곳에서 보면 ...

12월2일 백부장의 고백

  • 2009-12-02
  • 조회 수 6532

2009년 12월2일 백부장의 고백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15:39) 마가복음 기자를 비롯해서 공관복음 기자들은 한결같이 백부장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십자가 아래 섰던 백부장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이 누굴까요? 십자가 처형을 직접 집행한 사람인지, 아니면 평소에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어 소문을 듣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람인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듭니다. 어쨌...

10월31일 죄패 “유대인의 왕”

  • 2009-10-30
  • 조회 수 6459

2009년 10월31일 죄패 “유대인의 왕”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15:26) 십자가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죄패가 달렸습니다. 이 죄패는 원래 재판정으로부터 처형장까지 죄수가 목에 걸거나 손에 들고 가게 된 것입니다. 죄목이 복음서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이고,(마 27:37) 누가복음은 ‘이는 유대인의 왕’이며,(눅 23:38) 요한복음은 세 가지 말, 즉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입니다. ...

11월12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

  • 2009-11-11
  • 조회 수 6443

2009년 11월12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15:34) 제구시에, 즉 오후 3시에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고 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기에 사용된 언어는 히브리어도 아니고 헬라어도 아니며 로마어도 아닌, 아람어입니다.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에는 아람어가 공용어였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2]

  • 2006-05-26
  • 조회 수 6441

2006년 5월26일 야고보와 요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 1:19)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도의 대표를 베드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3명의 수제자에는 베드로를 포함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산위에서 신비한 모습으로 변화하던 그 순간에 함께 했으며, 공생애 마지막에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실 때도 함께 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가 먼저 부름을 받았고, 그 뒤로 야고보와 요한...

헤셸(13)

  • 2014-03-07
  • 조회 수 6440

진정한 기도는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게 되는 사건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 다가오는지를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 그 시작은 언어에 있지만 그 마지막은 모든 언어 너머에 있다. 기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사람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다해 말을 발설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세상 전체를 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아무런 의심 없이 단추를 눌렀는데 거대한 바퀴가 놀랍고도 무섭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과 같다. (93쪽) ...

톰 라이트(4) [4]

  • 2015-04-20
  • 조회 수 6433

4월20일 톰 라이트(4)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가 실제 그림을 최대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림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안내하는 박물관의 안내원처럼) 그림틀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만 신경이 팔려서 그림 자체를 보는 것은 잊어버립니다. 반대로 그런 뜬구름 잡는 설명을 많이 들었던 사람들은 그림틀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그림 자체도 들여다볼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 우리가 이 그림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그림은 엄격한 교리들로 이루어진 그림...

하나님을 본 사람, 요한복음 묵상(11) [24]

  • 2013-05-03
  • 조회 수 6395

요 1:18절은 좀 심각한 내용이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읽힐 수 있는 사건들이 적지 않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모세도, 여러 선지자들도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거나 보았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그것은 문학적인 수사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궁극적인 생명을 본다는 것, 즉 그것을 직접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톺아읽기 288

  • 2021-12-09
  • 조회 수 6321

대구 성서아카데미(dabia.net) 정용섭 목사 매일묵상 『누가복음 톺아 읽기』 288, 눅 17:11~19 나병 환자 열 명 https://youtu.be/ncMnzsfsj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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