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24

조회 수 987 추천 수 0 2024.04.18 20:13:1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0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4절의 표현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왕이 각각의 영광 가운데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거룩한 성에 들어간다는 말이냐, 하는 질문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받을 자는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21:8)에 던져질 자들은 모두 던져진 이후의 일이니까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들에게 자기 영광이 있다는 말이 특이합니다. 사람이나 나라 스스로 영광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영광의 빛이 사람과 나라를 완전하게 감싼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성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인 자체가 거룩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들을 감쌀 때 거룩한 무리가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칭의(稱義) 개념도 비슷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인간적인 한계를 보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의롭다고 보신다는 뜻입니다. 엄마의 눈에는 자기 아기가 아주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눈에 특별한 존재로 보이는 거지요. 이런 설명이 어떤 이들에게는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나 이런 표현의 깊이로 들어간 사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거기서 얻습니다.

땅의 왕들이라는 표현을 보고 거룩한 성에도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그런 왕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곳에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왕 같은 존재가 되겠지요. 아니, 왕보다 더 품격 높은 천사처럼 될 테니까요. 어쨌든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사람까지 각자의 영광에 참여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그런 영광의 그림자를 보고 있으며, 그 영광이 드러나는 순간인 종말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레벨:24]브니엘남

2024.04.25 17:44:34

이를 대 없습니다.- 이를 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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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24.04.25 19:43:51

아, 그렇군요. 이를 대, 이를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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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19

  • 2024-05-20
  • 조회 수 29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2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9절에서는 ‘제하여 버리는 죄’도 아주 준엄하게 다뤄집니다.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구원에서 배척된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꼭 필요한 모임까지 생략하거나 폐기하는 일이 벌어졌는지 모릅니다. 일종의 값싼 은혜나 율법 폐기론 같은 거 말입니다. 히브...

계 22:18

  •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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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1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요한계시록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다시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18절에서는 예언의 말씀에 무언가를 ‘더하는 죄’에 대해서, 19절에서는 ‘제하는 죄’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반복해서 경고해도 괜찮을 정도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확실한 영적 권위에서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꾸로 당시에 거짓 주장들이 우후죽순으...

계 22:17 [2]

  • 2024-05-16
  • 조회 수 40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0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는 표현이 매우 특이합니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구도에서 영으로서의 하나님이라면 신부는 교회이기에 성령과 신부는 동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피조물이라는 건 신학적으로 옳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시고 신부인 교회가 듣는다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17절...

계 22:16 [2]

  • 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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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9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제 주어가 ‘예수’로 나오는 문장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주어가 천사, 요한, 예수, 이렇게 종종 바뀝니다. 여기서 언급된 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가리킵니다. 2-3장에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2:12절에서도 설명...

계 22:15 [2]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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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8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유대인들에게 개는 부정한 짐승을 대표합니다. 깨끗한 짐승은 되새김질하고 발이 갈라진 것들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기가 막힐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오히려 충견 이미지가 강하지 않습니까. 특별 교육을 받은 개들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유대인들이 개를 부정한 짐승으로 볼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이 있겠지요. 본문에서...

계 22:14

  •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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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7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두루마기를 빤다는 말은 정결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퇴폐 문명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정결하게 산다는 게 출가 수도승처럼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수도승처럼 사는 게 무조건 정결한 삶도 아닙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정결하다거나 불결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파상의 단편 『비계덩어리』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줍니...

계 22:13 [2]

  •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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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6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은 같은 의미를 세 가지 변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미 계 1:8, 17, 그리고 2:8과 21:6절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습니다. ‘시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ἀρχὴ(아르케)입니다. 아르케는 요 1:1절에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태초는 한자이고 시작은 순수 우리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번역한 사람과 요한계시록을 번역한 사람이 달라서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진 ...

계 22:12

  •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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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5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속히 오실 그분께서 내리실 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상을 받을 자는 로마의 박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인간의 업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존재론적 깊이를 가리킵니다.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한 사람의 영혼은 세속적인 가치로 채워질 것이며, 거룩한 힘을 추...

계 22:11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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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4 22: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어린 양이신 재림주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이며 ‘때가 가까웠기에’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여유가 더는 없습니다. 불의한 자와 더러운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럽게 살게 하고, 의로운 자와 거룩한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런 명령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불의한 자는 더 시급하...

계 22:10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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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3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은 두루마리를 ‘인봉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인봉이라는 단어는 계 5: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에 있는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인봉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인봉을 열지 못합니다. 어린 양만이 그 인봉된 두루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22:10절에서 언급된 두루마리는 인봉되면 안 됩니다. 이유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계 22:9

  •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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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2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을 경배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천사 자신은 요한과 마찬가지로 경배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할 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신출귀몰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지성이나 도덕성에서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경배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경배는 우상숭배니까요.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

계 22:8

  • 2024-05-03
  • 조회 수 27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계 22:7 [2]

  • 2024-05-02
  • 조회 수 41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계 22:6 [1]

  • 2024-05-01
  • 조회 수 41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계 22:5

  • 2024-04-30
  • 조회 수 46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8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면서 거룩한 성이자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그곳에는 밤이 없다고 합니다. 빛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빛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밤이 없다는 말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악이 준동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 하나님’이라고 할 때 ‘주’는 그리스어 Κύριος(Lord)이고, ‘하나님’은 Θεὸς(God)입니다. 퀴리오스라는 ...

계 22:4

  • 2024-04-29
  • 조회 수 45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7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과 어린 양을 섬기는 종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라(4절) 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걸 문학적으로 무엇이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출 33...

계 22:3 [2]

  • 2024-04-26
  • 조회 수 81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6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절대적인 생명의 세계로 묘사하려고 온갖 묵시적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하나님을 옥황상제나 임금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보좌도 임금이 앉는 최고급 의자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성경 문장은 메타포(은유)이...

계 22:2

  • 2024-04-25
  • 조회 수 71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5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 나무가 하나의 품종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살겠지요. 매력적입니다. 과일만으로도 영양 공급이 충분할 테니까 말입니다. 육식을 즐기는 분들은 에덴동산도 그렇고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계 22:1

  • 2024-04-24
  • 조회 수 77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

계 21:27

  • 2024-04-23
  • 조회 수 65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3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27절에 다시 생명책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자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지 못한 자들은 이 세상의 악한 권력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계 13:8절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들은 구원에서 영원히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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