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4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까지 왔습니다. 22장에서도 요한은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를 통해서 묵시적 환상을 경험합니다. 생명수의 강은 창 2:10-14절 내용과 연결됩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에덴동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강이 나옵니다. 첫째 줄기의 강은 비손이고, 둘째는 기혼이며, 셋째는 힛데겔이고, 넷째는 유브라데입니다. 창세기는 강의 근원을 에덴동산이라고 말하나 여기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라고 말합니다. 에덴동산은 고대 유대인들에게 영원한 영적 고향입니다. 일상의 삶이 완벽하게 실현된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다른 생명체를 돌보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질 수 있다는 유혹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자유가 다른 생명체들을 돌보는 데 사용되지 못하고 자기를 높이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사람은 복지가 완벽하게 보장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자기를 신의 경지로 높이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에덴동산의 완벽한 복지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이 생명의 근원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기에 더는 자기를 신으로 높이려는 인간의 욕망이 작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은 탓인지 21세기 현대인은 여전히 완벽한 복지와 자기 신성화에 목숨을 걸고 삽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실패가 지금도 반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