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덧붙인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 요한 자신이 선지자의 전통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었겠지요. 그는 요한계시록 내용 전체를 완전히 독창적으로 작성하지는 않았습니다. 구약의 묵시 문헌인 에스겔, 스가랴, 다니엘, 이사야 일부 외에도 여러 선지자의 글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지자들의 영과 소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선지자들의 영과 소통하려면 그들의 글을 집중해서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겠지요. 선지자들의 글을 깊이 있게 읽고 이해하면 그들 수준의 영적 깊이로 들어갈 수 있고, 그런 수준의 깊이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근본에서 역사적입니다.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활동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들과 오늘 우리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집니다. 혼자 골방에서 비밀스러운 깨달음을 얻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신앙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오늘 그리스도교 예배 순서에 반드시 따라오는 사도신경도 이런 역사적 신앙이라는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2천 년 전 로마 교회에서 세례받을 때 공식적으로 고백한 그 내용을 오늘 우리도 똑같이 고백하는 겁니다. 정교회는 ‘니케아 신조’를 고백합니다만 의미는 비슷합니다.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조를 예배 형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그 내용을 공부하는 것도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가는 데 매우 중요하겠지요. 졸역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Wolfhart Pannenberg, Das Glaubensbekenntnis)과 그 책을 강독한 졸고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 강독』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제대로 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