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2:7

조회 수 467 추천 수 0 2024.05.02 20:34:5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요한이 문장을 정확하게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실 것이다.’라고 써야 합니다. 요한은 글쓰기의 문법적인 정확성보다는 메시지 자체에 관심이 있기에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들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요.

내가 속히 온다.’라는 7절 문장은 12절과 20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재림 신앙이 그리스도교의 원초적 생명력입니다. 사도신경에도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의 재림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기다려야 할까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이미 재림은 일어난 것일까요? 예수 재림에 관한 이야기가 살전 4:13-18절에 나옵니다. 16-7절만 읽겠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걸 문자로서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단순히 상징이라는 말일까요? 저는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메타포와 상징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메타포와 상징이 사실은 아니나 사실보다 더 궁극적인 현실(ultimate reality)이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재림이 말하는 궁극적인 현실이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여기서 길게 다룰 수는 없습니다. 속히 온다는 문장에 한정해서만 설명하겠습니다. ‘속히라는 부사로 번역된 그리스어 ταχύ는 영어 quickly에 해당합니다. 루터 번역 성경이 사용한 독일어 bald도 똑같은 뜻입니다. 이런 부사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어떤 때는 1년이 길지만 어떤 때는 10년도 에 해당합니다. 제 나이도 이제 70이 넘었는데,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겁니다. 지구 나이가 45억 년입니다. 이런 시간도 더 긴 시간에 비하면 속히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늘 숫자로 시간을 계산하기에 너무 빠르다거나 너무 느리다고 생각합니다만 궁극적인 차원에서 시간은 숫자의 범주를 초월합니다. 숫자로서 긴 시간도 없고 짧은 시간도 없습니다. 종말에 일어날 새 하늘과 새 땅, 그러니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경험될 것입니다. 138억 년 전에 발생한 빅뱅 창조가 종말과 동시적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종말이 들이닥치면 그제야 내가 속히 오리라.’라는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개인의 인생에서도 죽음의 순간이 오면 한평생이 정말 한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절감하듯이 말입니다.

두루마리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βιβλίον입니다. 비블리온은 책이라는 뜻 외에 두루마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성경이라는 영어 단어 Bible이 이 단어에서 왔습니다. 두루마리는 양피지로 만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두루마리의 내용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μακάριος)라고 했습니다. 마카리오스는 마 5장에 나오는 팔복에서 반복된 단어인 그리스어 Μακάριοι의 단수형입니다. 요한이 마태복음을 알고 있었을까요?


[레벨:30]모모

2024.05.03 01:11:04

헬라어 'taxu' 는 '타쿠'로 발음 되는지요?  타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4.05.03 19:59:47

예, 대충 그렇게 발음하면 됩니다.

χ는 'ㅋㅎ'라는 자음이고

ύ는 'ㅟ'라는 모음이에요.

ταχύ를 정확하게 발음하면 '타크휘'입니다.

줄여서 '타퀴'라고 하면 되겠지요.

제가 그리스어 선생이 아니라서 대충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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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6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은 같은 의미를 세 가지 변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미 계 1:8, 17, 그리고 2:8과 21:6절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습니다. ‘시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ἀρχὴ(아르케)입니다. 아르케는 요 1:1절에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태초는 한자이고 시작은 순수 우리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번역한 사람과 요한계시록을 번역한 사람이 달라서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진 ...

계 22:12

  •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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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5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속히 오실 그분께서 내리실 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상을 받을 자는 로마의 박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인간의 업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존재론적 깊이를 가리킵니다.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한 사람의 영혼은 세속적인 가치로 채워질 것이며, 거룩한 힘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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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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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4 22: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어린 양이신 재림주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이며 ‘때가 가까웠기에’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여유가 더는 없습니다. 불의한 자와 더러운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럽게 살게 하고, 의로운 자와 거룩한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런 명령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불의한 자는 더 시급하...

계 22:10

  •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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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3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은 두루마리를 ‘인봉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인봉이라는 단어는 계 5: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에 있는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인봉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인봉을 열지 못합니다. 어린 양만이 그 인봉된 두루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22:10절에서 언급된 두루마리는 인봉되면 안 됩니다. 이유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계 22:9

  •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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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2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을 경배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천사 자신은 요한과 마찬가지로 경배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할 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신출귀몰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지성이나 도덕성에서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경배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경배는 우상숭배니까요.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

계 22:8

  • 2024-05-03
  • 조회 수 28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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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2
  • 조회 수 46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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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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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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