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2:13

조회 수 424 추천 수 0 2024.05.11 00:05:08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6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은 같은 의미를 세 가지 변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미 계 1:8, 17, 그리고 2:821:6절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습니다. ‘시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ρχὴ(아르케)입니다. 아르케는 요 1:1절에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태초는 한자이고 시작은 순수 우리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번역한 사람과 요한계시록을 번역한 사람이 달라서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표상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이 알파와 오메가, 또는 태초와 종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태초는 물리학 용어로 빅뱅입니다. 물리학계에서는 빅뱅이 138억 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태양과 지구는 45억 년쯤 되었겠지요.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빅뱅이 발생하여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힘들고 믿기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물리학은 빅뱅 이후의 우주를 말할 뿐입니다. 성경의 역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우주 물리학을 알지 못했는데도, 자연은 본래 그렇게 존재했다고 생각한 그리스 철학자들과 달리 지구를 비롯한 우주가 시작한 시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존재의 신비를 따라가다가 그런 대답을 찾았을 수도 있습니다. 존재의 신비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돌은 존재하는데 돌과 물의 중간쯤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은 결국에 사라집니다. 있음과 없음은 비밀입니다. 인간도 생생하게 살아있다가 늙어서 죽고, 그 시체마저 흙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지구도 역시 언젠가 시작된 시점이 있고, 사라질 시점이 있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이런 존재의 신비 앞에서 알파이고 오메가이신, 그리고 빅뱅이며 그 빅뱅의 끝이신,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거나 무로 돌아가게 하는 궁극적인 분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이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이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통해서 더 깊어지면서 삼위일체 하나님 표상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보면 안 될까요?

저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는 선언이 단순히 종교적 독단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보편적(universal) 학문을 향해서 설득력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신학적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바르트 문장으로 바꾸면 Gott ist Gott!,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이런 명제가 보편적 정당성을 얻게 하는 일이 바로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겠지요. 그런 과업의 수행에 근거해서 설교와 목회의 방향도 잡혀야 하는 거고요. 개인적인 운명에서 말하면 하나님은 제가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숨을 허락하신 분이시면서 동시에 숨을 거둬가는 분이십니다. 저의 시작과 마지막은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이 선하시다면 저의 시작과 마지막도 다 선하겠지요.


[레벨:24]브니엘남

2024.05.11 06:12:03

1. 장자는 무유(無有)라는 표현을 쓰고

다석 유영모는 '없이 계신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2. 빅뱅 이전에도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우리 우주 밖 11차원에서 빅뱅으로 우리와 같은 4차원 우주를 수없이 창조하고 있지 않을까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4.05.11 19:56:41

맞아요. 있음과 없음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없음이 있어야 있음도 있을 수 있고,

있음이 있어야 없음도 있거나 없을 수 있겠지요.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하나님 표상 중에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표현이 

제 마음에 쏙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있음과 없음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뜻이니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원당일기(294)- 이발 file [3]

  • 2024-07-25
  • 조회 수 382

2022년 12월에 북안면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오늘 1년 7개월만에 다시 미용실에 들렸다. 그동안 셀프로 깎았는데 아내가 더는 봐주기 힘들었는지 가끔씩이라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손질하라고 닦달해서 오늘 약국, 마트, 카서비스 등등, 겸사겸사 북안면에 다시 나갔다. 내 말을 들은 미용사는 셀프로 하셨는데도 예쁘게 깎으셨네요, 하고 덕담을 주셨다. 나이는 대략 60 전후다. 1층은 미용실이고 2층은 살림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없어서 연락 전화 번호를 돌리니 금방 내려왔다. 머리를 아...

원당일기(293)- 풀과의 전쟁(?) file [5]

  • 2024-07-24
  • 조회 수 368

장마 전까지는 기온이 높아도 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나 장마 후반이 되면 풀 걱정이 심해지고 흔히 말하듯 전쟁을 해야 한다. 흙이 있는 곳에는 무슨 풀이든지 뿌리를 내리고 무성해지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감당 불가다. 그래서 잔디만 예초기로 깎아주고 다른 풀은 대충 정리한다. 겉으로만 보면 뱀이 나올 거 같기는 한데 우리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길고양이 덕분으로 뱀과 쥐는 얼씬도 못한다. 매일 아침 먹이는 주는 값을 그 친구들이 하는 셈이다. 마당 입구 쪽, 그러니까 북쪽 풍경...

원당일기(292)-복더위 file [2]

  • 2024-07-23
  • 조회 수 390

어제 7월22일이 24절기의 하나인 대서(大暑)였다. 모레 25일은 중복이다. 8월5일은 입추다. 이렇게 계절과 절기는 오고 간다. 말복인 8월14일까지는 더위와 싸워야 한다. 싸워서 이길 수는 없으니 친하게 지내는 게 좋다.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사람은 대충 무심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거의 24시간을 머무는 서재 겸 침실의 지금 온도는 29도다. 가장 가벼운 차림으로 지내면 크게 덥다는 생각은 안 드는 온도다. 그래도 선풍기는 틀어야 한다. 잠잘 때는 바람을 간접으로 받으려고 열어둔 방문 앞에 선풍기를 다른...

원당일기(291)- 다시 시작하며 file [2]

  • 2024-07-22
  • 조회 수 447

'원당일기' 1번은 2011년 4월6일이다. 원당에 15평 작은 집을 짓고 주말에만 들리곤 할 때였다. 2년 후, 그러니까 내가 환갑이 되던 2013년 4월에 집을 증축하고 가족 전체가 이사를 왔다. 그 사이에 '원당일기'를 쓰다 쉬다를 반복했다. 쉴 때는 다른 주제로 글을 썼다. 그 글을 모아서 책을 냈다. <목사공부>와 <목사구원> 등등이다. 홍성사에 맡긴 <예수어록>은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2022년에는 물(物)에 대해서 191편의 짧은 글을 썼고, 2022년 말부터 올해 5월까지 <일흔살에 다시읽은 요한계시록>을 썼다. ...

계 22:21 [5]

  • 2024-05-24
  • 조회 수 727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4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은 전체가 22장이고 404구절로 구성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습니다. 이런 정도의 분량을 양피지에 기록하려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물리적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는 마지막 절 앞에 섰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심정입니다. 사백사 구절을 다 읽고 설명했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기도 하고, 보충해야 할 말이 많기도 합니다. 이 구절들이 각각 종말론적으로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종말이, 요한계...

계 22:20

  • 2024-05-23
  • 조회 수 31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3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전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한 구절을 뽑으라고 한다면 22:20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말씀에 상응하여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찬양이 나오니까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문구가 고린도 교회 예배문에서는 아람어로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아람어 ‘마라나타’(고전 16:22, Μαράνα θά)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이 ...

계 22:19

  • 2024-05-20
  • 조회 수 33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2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9절에서는 ‘제하여 버리는 죄’도 아주 준엄하게 다뤄집니다.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구원에서 배척된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꼭 필요한 모임까지 생략하거나 폐기하는 일이 벌어졌는지 모릅니다. 일종의 값싼 은혜나 율법 폐기론 같은 거 말입니다. 히브...

계 22:18

  • 2024-05-17
  • 조회 수 34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1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요한계시록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다시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18절에서는 예언의 말씀에 무언가를 ‘더하는 죄’에 대해서, 19절에서는 ‘제하는 죄’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반복해서 경고해도 괜찮을 정도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확실한 영적 권위에서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고, 거꾸로 당시에 거짓 주장들이 우후죽순으...

계 22:17 [2]

  • 2024-05-16
  • 조회 수 42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400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는 표현이 매우 특이합니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구도에서 영으로서의 하나님이라면 신부는 교회이기에 성령과 신부는 동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피조물이라는 건 신학적으로 옳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시고 신부인 교회가 듣는다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주석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17절...

계 22:16 [2]

  • 2024-05-15
  • 조회 수 39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9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제 주어가 ‘예수’로 나오는 문장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주어가 천사, 요한, 예수, 이렇게 종종 바뀝니다. 여기서 언급된 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가리킵니다. 2-3장에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2:12절에서도 설명...

계 22:15 [2]

  • 2024-05-14
  • 조회 수 33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8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유대인들에게 개는 부정한 짐승을 대표합니다. 깨끗한 짐승은 되새김질하고 발이 갈라진 것들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기가 막힐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오히려 충견 이미지가 강하지 않습니까. 특별 교육을 받은 개들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유대인들이 개를 부정한 짐승으로 볼 수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이 있겠지요. 본문에서...

계 22:14

  • 2024-05-13
  • 조회 수 262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7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두루마기를 빤다는 말은 정결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퇴폐 문명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정결하게 산다는 게 출가 수도승처럼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수도승처럼 사는 게 무조건 정결한 삶도 아닙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정결하다거나 불결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파상의 단편 『비계덩어리』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줍니...

계 22:13 [2]

  • 2024-05-11
  • 조회 수 424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6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은 같은 의미를 세 가지 변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미 계 1:8, 17, 그리고 2:8과 21:6절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왔습니다. ‘시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ἀρχὴ(아르케)입니다. 아르케는 요 1:1절에도 나옵니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태초는 한자이고 시작은 순수 우리말입니다. 요한복음을 번역한 사람과 요한계시록을 번역한 사람이 달라서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진 ...

계 22:12

  • 2024-05-09
  • 조회 수 30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5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속히 오실 그분께서 내리실 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상을 받을 자는 로마의 박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인간의 업적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존재론적 깊이를 가리킵니다.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한 사람의 영혼은 세속적인 가치로 채워질 것이며, 거룩한 힘을 추...

계 22:11

  • 2024-05-08
  • 조회 수 335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4 22:11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어린 양이신 재림주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이며 ‘때가 가까웠기에’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여유가 더는 없습니다. 불의한 자와 더러운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럽게 살게 하고, 의로운 자와 거룩한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런 명령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불의한 자는 더 시급하...

계 22:10

  • 2024-05-07
  • 조회 수 23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3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요한은 두루마리를 ‘인봉하지 말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인봉이라는 단어는 계 5: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편에 있는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인봉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두루마리의 인봉을 열지 못합니다. 어린 양만이 그 인봉된 두루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22:10절에서 언급된 두루마리는 인봉되면 안 됩니다. 이유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계 22:9

  • 2024-05-06
  • 조회 수 24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2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천사는 요한에게 자신을 경배하지 말라고 말립니다. 천사 자신은 요한과 마찬가지로 경배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할 종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신출귀몰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지성이나 도덕성에서 존경받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경배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경배는 우상숭배니까요.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

계 22:8

  • 2024-05-03
  • 조회 수 289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1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글을 쓴 이가 요한이라는 사실은 여기 계 22:8절만이 아니라 계 1:1, 2, 4절 등등에도 나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요즘도 영어 이름으로 ‘존’이 흔하듯이, 당시에도 흔해서 실제로 그가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로 활동하던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만 분명합니다. 그는 ‘보고 들은 자’라고 했습니다. 보고 듣는 행위...

계 22:7 [2]

  • 2024-05-02
  • 조회 수 466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90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내가 속히 온다.’라는 문장에서 주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추정되기는 하나 문맥으로만 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지금 일곱 천사 중의 한 천사에게서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따라가는 중입니다. 이런 문맥에서만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천사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 관점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락에서 본다면 속히 올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

계 22:6 [1]

  • 2024-05-01
  • 조회 수 431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89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6절부터 21절까지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표제가 달렸습니다. 앞에서 묘사된 모든 묵시적 미래가 예수의 오심으로 실현된다는 뜻이겠지요.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도 해도 괜찮았을 텐데 선지자들의 영이라는 표현을 ...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