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섹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섹스 없이 후손을 번식할 수 있게 했다면 오늘날 섹스와 관련해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아예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아직 완료된 게 아니니까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섹스 없이 자식을 낳게 될지도 모른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라는 예수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다. 결혼제도가 사라져도 섹스는 가능할 수 있으나 ‘천사’처럼 된다고 하니까 섹스도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부활 생명으로 변화하는 하늘나라에 결혼이 없다면 당연히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 사이에 섹스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 창조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구약성서 신학에서 E 문서로 불리는 창 1:27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무미건조한 문장이다. 그런데 J 문서에 속한 창 2:18절 이하를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잠들었을 때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풍성한 문장이다. 그들은 나체였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둘이 한 몸을 이루라.’는 문장이 섹스를 암시하는지는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본문이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 있는 상태인데 ‘부모를 떠나’라고 하는 걸 보면 남녀의 결혼과 가부장 제도가 자리를 잡은 후대의 관점이 여기에 투영된 것이다. 선악과 사건 뒤에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 이때부터 섹스가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라고 하지 않으셨겠는가. 에덴동산 이야기는 일종의 신화적인 글쓰기이기에 이를 근거로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 사이에 섹스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문제는 오히려 생물학적 진화를 근거로 접근하는 게 옳다.
내가 그동안 배운 자연 상식에 따르면 인간의 섹스는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결과다. 인간만이 아니라 포유류를 비롯한 모든 짐승은 암놈과 수놈의 섹스를 통해서 후손을 번식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물고기도 그렇고, 곤충도 그렇고, 식물도 근본에서는 다르지 않다. 인간의 섹스는 다른 포유류들의 섹스와 구분된다. 다른 포유류들의 섹스는 오직 후손 번식을 위한 행위이지만 인간의 섹스는 후손 번식만이 아니라 몸의 쾌감을 얻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적인 쾌감이 인간의 생존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자식을 건사하려고 남자는 더 열심히 수렵 활동을 하고 농사도 지으며 여자는 집안을 열성적으로 관리한다. 두 사람 사이에 성적인 교감이 탄탄하게 유지된다면 그들은 일상을 더 열정적으로 살아낼 것이다. 성적인 교감만이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인간 사이에는 그 외에도 많은 교감이 있을 수 있으나 섹스는 아주 특별하기에 두 사람의 교감을 더 돈독하게 하는 건 분명하다. 요즘 섹스리스 젊은이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인간관계로 스트레스가 쌓여서 생명력이 고갈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생 인류가 모든 포유류 동물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섹스 행위자들로 진화되었다는 사실은 곧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또는 지금도 창조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섹스가 없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그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미래를 살아야 할 우리 후손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일본에서는 사람보다도 더 사람 같은 섹스인형이 많이 팔린다네요.
사람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원하는 모드대로 다 해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