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일- 놀라운 가르침

조회 수 3631 추천 수 31 2006.06.01 23:53:57
2006년 6월1일 놀라운 가르침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2)

예수님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무식한 목수의 아들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종교의 본질을 가르쳤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놀랐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놀랐을까요? 마가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상세한 말을 하지 않고, 단지 ‘놀랐다’는 말만 전합니다. 아마 앞으로 자신이 기록해야 할 마가복음서의 방향을 여기서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서, 그리고 그의 행위와 그의 사건 앞에서 인간은 놀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암시 말입니다.
사실 성서는 오직 이 한 가지의 주제에 집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놀라움! 하나님의 창조 행위 앞에서 경험하는 놀라움! 그가 일으키는 전혀 새로운 역사 앞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놀라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일으킨 구원 사건 앞에서 경험하는 놀라움! 그가 완성하신 종말 사건 앞에서의 놀라움! 그 모든 것을 안에 담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서 사람들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바둑을 약간 둡니다. 아마추어 4급이면 대충 바둑의 묘미를 알 정도이겠지요. 저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프로 기사들의 바둑을 보면 늘 놀랩니다. 아니 저런 수가 거기 있었단 말인가? 제 눈에 보이지 않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들이 툭툭 나옵니다. 그렇지만 프로 기자들의 그 수도 절대적인 게 아닙니다. 바둑의 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갑니다. 왜냐하면 바둑의 현장이 늘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로 세로 19줄에 불과한 바둑판에서도 수의 종류가 무한에 가깝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세상을 창조하고 완성하실 하나님의 수는, 그것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성서의 수는 아예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를 아예 모른다고 말해야 옳습니다. 흡사 초등학생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는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지금 그런 놀라움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영적인 놀라움을 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박수치고, 웃고, 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그래서 겉으로 신앙적인 심층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제법 많습니다. 무감각한 세상에서 그런 감수성을 보인다는 건 귀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 경험도 역시 영적인 놀라움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수성은 인간의 감정적 현상일 뿐이지 그리스도교적 영성과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현상은 사이비 이단들에게서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고,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는 군중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어떤 진리의 깨달음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심리적인 자극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작용하는 하나의 생물학적인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에 집중하는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나 인식과 상관없이 순전히 인간의 주관적인 만족감을 강화하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십시오. 개인이나 교회 공동체가 신앙의 연조와 비례해서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심화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심취하기보다는 매일 시트콤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청소년들처럼 이미 주어진 신앙의 형식을 치장하고, 거기에 종교적 재미를 찾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동안 목회를 쉬면서 경험한 여러 교회의 신앙적인 행태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벤트를 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하나님의 사건 앞에서 경험하는 존재론적 놀라움이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리하고 소유할 수 있는 재미를 만들어 내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앙의 세계에서도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명제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이면 놀랄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거나 보인다는 말은 직접적인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를 직접 대면하는 게 아니라 등을 스쳐서 볼 뿐이고, 그의 존재를 큰 소리로 명확하게 듣는 게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 스쳐 들을 뿐입니다. 어쨌든지 생명의 신비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직접 본 예수님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알아듣는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흡사 시인들이 창문에 떨어진 물방울을 보고 놀라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말씀을 통한 놀라움이 별로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매우 건조하거나 잠들어 있다는 징조이며, 더 심각하게는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교회생활의 열정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주님, 말씀의 놀라운 세계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아멘.

[레벨:18]은나라

2016.07.28 16:09:29

종교적 재미에 심취하기보단..

말씀의 놀라움에 깊이 빠져들고 싶습니다..

이 놀라움의 놀람이 제게도 날마다의 은혜로 주시길 간구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83 7월29일 오병이어 (4) 2007-07-29 1981
482 7월28일 오병이어 (3) [1] 2007-07-28 2014
481 7월27일 오병이어 (2) 2007-07-27 2189
480 7월26일 오병이어 (1) [1] 2007-07-24 2680
479 7월25일 이백 데나리온 [1] 2007-07-24 4372
478 7월24일 너희가 주라! 2007-07-24 1788
477 7월23일 먹어야 산다. [4] 2007-07-23 2077
476 7월22일 저녁나절 2007-07-22 1856
475 7월21일 민중과 예수 (7) 2007-07-21 1550
474 7월20일 민중과 예수 (6) 2007-07-20 1520
473 7월19일 민중과 예수 (5) 2007-07-19 1903
472 7월18일 민중과 예수 (4) 2007-07-18 1835
471 7월17일 민중과 예수 (3) 2007-07-17 1891
470 7월16일 민중과 예수 (2) 2007-07-16 1587
469 7월15일 민중과 예수 (1) 2007-07-15 1639
468 7월14일 한적한 곳 2007-07-14 1875
467 7월13일 쉼 [1] 2007-07-13 1857
466 7월12일 사도들의 보고 2007-07-12 1698
465 7월11일 요한의 시체 2007-07-11 1695
464 7월10일 헤로디아의 분풀이 2007-07-10 1583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