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7일- 민중 (4) -주체성-

조회 수 2773 추천 수 22 2006.07.17 23:46:53
2006년 7월17일 민중 (4) -주체성-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니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 1:45)

나는 민중 신학자들에게 연대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들에게 민중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나는 민중 신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전제에서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민중은 구원의 객체인가, 주체인가? 물론 이런 질문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은 이미 당연한 대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민중은 구원의 객체이면서 동시에 주체라고 말입니다. 과연 이런 주장이 옳은 걸까요?
일단 민중이 구원의 객체라는 말은 옳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에는 삶의 희망을 찾을 길 없는 사람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기 때문에 민중이 그 구원의 우선적인 대상이라는 사실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해야 할 교회가 민중들의 삶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70-80년대에 이런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많은 민중교회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산업 현장에 들어가서 노동권 확보에 주력했고, 달동네에 들어가서 각종 문화 사업을 전개했으며, 통일과 환경, 그리고 인권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민중신학이 단지 학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 교회 운동으로 전개되었다는 건 한국교회의 큰 업적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민중교회의 흔적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를 빚었을까요? 1990년 대 초에 벌어진 사회주의 몰락이 그 근본적인 이유일까요? 우리나라도 이제 명실상부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경제 여건도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일까요? 정치사회적 환경변화가 한 요인이 될 수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결정적인 것은 오히려 민중신학 내부에 있습니다.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민중신학도 역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생각에 너무 이상적으로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이들로부터 구원”을 주장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을 구원하게 되리라는 견해는 일견 타당성과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제 부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보다 가난을 더 두려워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들로부터의 구원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민중신학도 이런 해방신학적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태일 열사로부터 구원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파급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노동조합은 조합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기업의 노동조합과 하청기업의 노동조합은 서로 연대하지 못합니다. 서로의 이익이 중복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자체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인간이해가 지나치게 이상주의로 흘렀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현실로서의 인간 이해가 없으면 거기에 토대한 모든 이론은 탁상공론이, 모래 위의 집이 될 공산이 큽니다. 사회주의 몰락의 원인도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능력만큼 노동하고, 필요한 것만큼 가져가는 이런 공산사회는 성서의 가장 원초적인 공동체 표상입니다. 그런 종말론적 꿈을 마르크스는 세속화 했습니다. 정의를 원한다는 낙관적 인간이해에 기초해서 그런 사회를 현실화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민중만이 아니라 가진 자들과 기득권자들도 역시 구원의 대상입니다. 반면에 구원의 주체는 어느 특정 집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 이외에 어느 특정 집단에서 구원이 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주님, 당신만이 온전한 통치자이심을 믿습니다. 아멘.

[레벨:7]늘오늘

2006.07.18 01:04:45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이합집산, 그렇게 모여들고 흩어지고,

노조에게서 또다른 귀족, 기득권, 이익집단의 냄새가 나고,
교회에게서 구원의 향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뭔가 또다른 소그룹 운동을 꿈꿔야 할까.
그냥 이대로 충분한 것일까.

그들의 길과 그의 길,
나도 모르는 나의 길.

하나님이 특정집단을 필요에 따라 쓰시겠지요?
그것을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림짐작으로나마, 마치 이 길이 그 길인 것처럼,
가야하는 것 아닐까요.
주체적으로... 마치 내가 가는 것처럼...
오류와 실패를 친구삼아..

p.s. 틸리히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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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6.07.21 23:29:01

틸리히의 책을 읽기 시작하셨다니
잘 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의 강의를 듣는 거나 진배 없습니다.
틸리히 책을 읽는 택시 기사라!
보기 좋군요.
장마 시기에는 손님이 더 많은지...

[레벨:11]권현주

2006.08.08 16:45:49

민중이 구원의 주체로 여겨지거나 강조되어질 수 있다는 관점은 문제적인것 같읍니다.
민중은 역사의 주체일 뿐일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도
인간이성으로 인식되어지는 차원의 역사이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개입까지 염두에 둔 종합적인 차원에서의 관점일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이성의 힘에 의지한 정도의 차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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