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4일 중풍병자

조회 수 2935 추천 수 29 2006.07.25 00:00:17
2006년 7월24일 중풍병자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막 2:3)

중풍병자 치유 이야기가 3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들것에 실려 온 이 사람의 이름은 없습니다. 본문의 중풍병자에게도 원래 이름이야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마가가 생략한 것 뿐입니다.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름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비극입니다. 개똥이, 쇠똥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옛날에 비해서 오늘은 아무리 가난한 집 아이라고 하더라도 고유한 이름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익명성은 여전합니다. 아니 현대인들은 자의에 의해서 익명성 뒤로 숨는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익명성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는 하지만, 즉 개인적인 자유가 보장되는듯하지만 실제로는 도구화된다는 점에서 더 위태로운 조짐입니다.  
어쨌든지 이름 없이 병명으로만 불리는 본문의 중풍병자는 예수님에게 올 때도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사람이 드는 들것에 실려 그곳까지 왔습니다. 이 치유 사건에 관한 본문 전체를 읽어가다 보면 이상한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고쳐달라거나, 감사하다거나 하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향해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도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병이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각한 것이었을까요? 그런 문제는 이 본문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서기자는 그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것의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성서의 직접적인 관심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중풍병자의 입장에서 본문을 읽어볼 필요도 있습니다. 일종의 성서 <뒤집어 읽기>입니다. 이 중풍병자의 실존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생존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 그 삶이 철저하게 파괴된 사람들이 어디나, 어느 때가 많습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거나 불치병을 앓는다는 사람들은 2천 년 전만이 아니라 오늘처럼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지천입니다. 이런 숙명적인 경우만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불행들은 더 많습니다. 어린이 유괴, 성폭행, 전쟁에 의한 민간인 살해와 강간, 가정과 학교폭력, 실업 등등, 최근까지도 이런 일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와 같은 상황이 옛날에 비해 오늘 더 심각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 네 사람들이 중풍병자의 이웃인지, 친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중풍병자에게 내려진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어 가질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만약 이 네 사람이 없었다면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원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셈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배타적 권위라고 하더라도 그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오는 일까지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가는 일은 귀찮습니다. 우선 자기 일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런 일에 의미를 별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봐야 낫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냉소가 우리의 지배하고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이 땅의 생태라고 바꾸어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중에 누가 자기의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이런 걸 삶의 주제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주님, 중풍병과의 투쟁에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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