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648
2007년 12월31일 고르반(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자신들의 전통에 사로잡힘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놓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사실 이걸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의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본인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가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외교관들도 속을 감추고 외교적 발언을 잘 해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종교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겉모양은 경건해보이지만 속은 아주 세속적인 경우가 우리에게 많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대주교들이 재림한 예수를 감옥에 넣은 사건에서 우리는 이런 사태의 극치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겉과 속의 불일치만이 아니라 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계명이며, 무엇이 사람의 전통인지 구별할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사건이 중세기의 마녀사냥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하나님의 행위와 일치시킵니다. 일종의 확신범이지요.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종종 일어납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오늘 우리 개신교가 사회를 향해서 취하는 선교적 태도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구호는 접어둔다 하더라도, 온갖 종류의 전도 프로그램도 이런 위험성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행위를 고르반으로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막 7:1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자신들의 전통에 사로잡힘으로써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놓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사실 이걸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의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본인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가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외교관들도 속을 감추고 외교적 발언을 잘 해야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종교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겉모양은 경건해보이지만 속은 아주 세속적인 경우가 우리에게 많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대주교들이 재림한 예수를 감옥에 넣은 사건에서 우리는 이런 사태의 극치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겉과 속의 불일치만이 아니라 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계명이며, 무엇이 사람의 전통인지 구별할 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사건이 중세기의 마녀사냥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하나님의 행위와 일치시킵니다. 일종의 확신범이지요.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종종 일어납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오늘 우리 개신교가 사회를 향해서 취하는 선교적 태도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구호는 접어둔다 하더라도, 온갖 종류의 전도 프로그램도 이런 위험성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행위를 고르반으로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