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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7일 오병이어 (44)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떡과 물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고 합니다. 남자만 계산해도 5천명이 넘는다고 하는 그 많은 무리들이, 그래서 제자들이 이들을 먹이려면 2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말한 그 무리들이 배불리 먹었다는군요.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가 무얼 말하는지 따라잡기가 쉽지 않군요. 바로 앞 대목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끼니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는 제자들의 질문과 너희가 주어라, 하는 예수님의 답변이라든지,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부분적으로 어색한 대목이 엿보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읽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술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 두 사람의 끼니에 불과한 오병이어로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지, 우리 주님이시니까 그런 능력이 있지, 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 분들은 오병이어 사건을 예수님의 당연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여기는 겁니다. 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더 넓혀서 이렇게 질문하는 게 좋겠군요.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실제로 행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보도가 아주 많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거나 물위를 걷고, 불치 병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동정녀 출생 자체도 초자연적이었습니다. 이런 마당이니 오병이어로 5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능력쯤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 이런 성서의 보도를 무조건 믿으면 편하겠지만, 우선 그 진상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믿는 게 옳지 않을까요?
다 배불리 먹고 (막 6:42)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떡과 물고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고 합니다. 남자만 계산해도 5천명이 넘는다고 하는 그 많은 무리들이, 그래서 제자들이 이들을 먹이려면 2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말한 그 무리들이 배불리 먹었다는군요.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가 무얼 말하는지 따라잡기가 쉽지 않군요. 바로 앞 대목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끼니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는 제자들의 질문과 너희가 주어라, 하는 예수님의 답변이라든지,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부분적으로 어색한 대목이 엿보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읽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술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 두 사람의 끼니에 불과한 오병이어로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지, 우리 주님이시니까 그런 능력이 있지, 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 분들은 오병이어 사건을 예수님의 당연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여기는 겁니다. 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더 넓혀서 이렇게 질문하는 게 좋겠군요.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실제로 행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보도가 아주 많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거나 물위를 걷고, 불치 병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다고 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동정녀 출생 자체도 초자연적이었습니다. 이런 마당이니 오병이어로 5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능력쯤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 이런 성서의 보도를 무조건 믿으면 편하겠지만, 우선 그 진상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믿는 게 옳지 않을까요?
실질적인 진실이라? 그럼 복음서는 실질적인 진실이 아니란 의미가 되나요? 목사님께서 언어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실질적인 진실이란 말은 표현된 그 이상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뜻일겝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국 복음서가 실질적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반어적 의미 또한 담고 있으니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불립문자란 말이 있습니다. 말로 설 수 없는 말... 글로 설 수 없는 글... 이런 뜻입니다. 이 말을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계시언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경전에 쓰인 말은 결국 비밀을 담고 있는 계시언어라는 것입니다.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그 세계를 말로 담았으니 당연히 비밀이 숨겨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목사님께서는 "실질적인 진실 혹 진상"이라 하신 듯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참으로 어색하기도 하고 궁색함도 엿보입니다. 적절한 말이 없을까요? 그리고 "신학적 사태"라는 것도 좀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표현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시각에서 만들어진 언어 같습니다. 이런 부정을 전제로 한 것 같은 언어말고 정말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담아낼 그런 멋진 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