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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18일 바람이 그치다.(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복음서 기자는 이 대목에서 제자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49절에서 예수님을 유령인가 해서 소리를 지른 적이 있고, 50절에서 그 예수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복음서 기자가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놀람의 문제는 며칠 전의 묵상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상황은 앞의 상황과 약간 차이가 납니다. 앞에서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시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바람이 그치는 걸 보고 놀란 것입니다. 물위를 걷는 것과 바람이 그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놀랄만한 사건일까요?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겠지요. 복음서 기자가 제자들의 영적인 경험을 그런 방식으로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입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이 실제로 바람을 그치게 한 것인가, 하는 질문은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실제로 걸은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이지요. 이 문제는 앞에서 어느 정도 정리되었겠지만, 말씀에 접근하는 방법을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바람의 문제도 잠시 검토해보지요.
예수님은 막 4:35-41절에 보도된 사건에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적이 있는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바람을 잔잔하게 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른 후에 바람이 그쳤다고만 진술하는데도 독자들은 바람을 그치게 할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겠지요. 복음서 기자도 그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는 자연현상도 복종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제자들의 마음에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막 6:51)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고 합니다. 복음서 기자는 이 대목에서 제자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49절에서 예수님을 유령인가 해서 소리를 지른 적이 있고, 50절에서 그 예수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복음서 기자가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놀람의 문제는 며칠 전의 묵상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상황은 앞의 상황과 약간 차이가 납니다. 앞에서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시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바람이 그치는 걸 보고 놀란 것입니다. 물위를 걷는 것과 바람이 그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놀랄만한 사건일까요?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겠지요. 복음서 기자가 제자들의 영적인 경험을 그런 방식으로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입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이 실제로 바람을 그치게 한 것인가, 하는 질문은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실제로 걸은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이지요. 이 문제는 앞에서 어느 정도 정리되었겠지만, 말씀에 접근하는 방법을 공부한다는 기분으로 바람의 문제도 잠시 검토해보지요.
예수님은 막 4:35-41절에 보도된 사건에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적이 있는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바람을 잔잔하게 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른 후에 바람이 그쳤다고만 진술하는데도 독자들은 바람을 그치게 할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겠지요. 복음서 기자도 그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는 자연현상도 복종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제자들의 마음에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예수님이 제 심령의 배에 오르는 순간 그동안 내 안에서 불었던 의심의 바람들이 거쳤습니다.
왜???????????????수없이 질문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노력했지만
시지프스가 산으로 들어 올렸던 돌이 또 굴러 떨어지는
그렇게 신에 의해서 처형된 비참한 삶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 지겨웠습니다.
심지어 이런 삶을 과연 살아야 할까?
질문하고 고민하고 이 해결되지 않는 부조리에 치를 떨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내 마음 깊은 곳 그 밑바닥까지 친히 내려 오셨습니다
삶의 의미를 부여 해 주셨습니다.
지루하고 따분했던 일상들에게 명하여,
늘 새로운 날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예수님은 저에게 하늘의 별도 따다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