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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18일 오병이어 (24)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막 6:41)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어서 물고기 두 마리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 빵이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 빵을 통째로 주었는지 아니면 한 개를 반이나 삼등분 했는지 본문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든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 다시 잘게 쪼개서 주었는지 아니면 통째로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빵 한 개가 별로 크지 않았을 겁니다. 요한복음 전승에 따라면 이 빵과 물고기는 어린아이가 가져온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요한복음이 왜 공관복음에 전혀 언급이 없는 어린아이를 거론했을까요? 오병이어가 큰 먹을거리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어린아이의 한 끼, 또는 두 끼 먹을거리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 어린아이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빵을 제자들에게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오병이어는 한 식구의 한 끼 먹을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빵 한 개는 아무리 커봐야 왕만두 하나 크기에 불과하겠지요. 그걸 사람들에게 잘게 나누어주기는 힘듭니다.
성서기자는 지금 어떤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도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무언가 엄청난 사건들을 기억과 전승에 의지해서 보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보도와 해석이 성서의 두 기둥입니다. 성서는 한편으로 보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해석입니다. 보도는 사실(fact)의 관점이 강한 반면에, 해석은 사건(event)의 관점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관점이 명백하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공속(共屬)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병이어 이야기도 역시 사실이면서 동시에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막 6:41)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어서 물고기 두 마리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 빵이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 빵을 통째로 주었는지 아니면 한 개를 반이나 삼등분 했는지 본문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든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때 다시 잘게 쪼개서 주었는지 아니면 통째로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빵 한 개가 별로 크지 않았을 겁니다. 요한복음 전승에 따라면 이 빵과 물고기는 어린아이가 가져온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요한복음이 왜 공관복음에 전혀 언급이 없는 어린아이를 거론했을까요? 오병이어가 큰 먹을거리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어린아이의 한 끼, 또는 두 끼 먹을거리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 어린아이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빵을 제자들에게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오병이어는 한 식구의 한 끼 먹을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빵 한 개는 아무리 커봐야 왕만두 하나 크기에 불과하겠지요. 그걸 사람들에게 잘게 나누어주기는 힘듭니다.
성서기자는 지금 어떤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도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무언가 엄청난 사건들을 기억과 전승에 의지해서 보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보도와 해석이 성서의 두 기둥입니다. 성서는 한편으로 보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해석입니다. 보도는 사실(fact)의 관점이 강한 반면에, 해석은 사건(event)의 관점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관점이 명백하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공속(共屬)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병이어 이야기도 역시 사실이면서 동시에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