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406) 20:26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 근거가 요 20:24-29절이다. 도마는 예수를 보았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손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드레가 지나서 예수는 제자들의 모임에 다시 나타났다. 첫 번 경우와 같은 점은 문이 닫혀 있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점은 도마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이번에도 평화의 인사를 먼저 전한다. 19절과 21절에 이어진 세 번째 인사다. “에이레네 휘민

인간은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걸까? 오늘 21세기 사람들은 지난 인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서 살지만, 여전히 평화롭게 살지 못한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명제가 오늘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야생동물처럼 단순히 먹을 게 부족해서, 즉 먹고 살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간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로도 형제를 죽일 수 있다.

예수가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로 실제로 줄 수 있는가? 그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인가? 답을 말하기는 쉬워도 그 답을 이 세상에서 현실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기독교인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평화롭게 산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 사태 앞에서 보이는 한국교회의 행태를 평화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한국교회 안에 팽배한 동성애 혐오, 타종교 혐오, 좌파 혐오, 가난 혐오는 예수 평화를 아는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성질이다. 이런 모습이 나에게는 동생을 죽이려고 돌을 치켜든 가인으로 보인다. 현대 정신 분석은 이런 사람의 병을 분노 조절 장애라고 부른다. 과연 우리에게 예수의 평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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