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167
10: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의 거인 천사가 사자처럼 포효합니다. 이를 요한은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는 거 같다고 묘사합니다. 한 우레만 하더라도 지축을 흔드는 소리를 내는데, 일곱 우레라 하니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됩니다. 이런 묘사를 어른들은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아이들은 실감할 겁니다. 아이들은 동화의 세계를 현실로 느끼니까요.
알라딘의 요술램프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마법사의 흉계가 실패하고 순진한 청년 알라딘이 공주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거인 요정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정은 주인의 요청을 다 받아서 해결해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요정은 알라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요정도 인간미가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요정 이야기는 세상을 마술처럼 느낄 수 있도록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런 상상력은 비현실적이라서 그냥 아이들의 흥밋거리일 뿐이지 어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안 계시겠지요. 아이들의 동화가 어른들의 합리적 사유에 못지않다는, 아니 실제로는 훨씬 더 현실(reality)에 가깝다는 체스터턴의 견해(『정통』)를 저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세상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며, 그래서 종말을 향해서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공룡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를 비교하면 동화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요한의 묵시적 심판 이야기 역시 열린 종말을 향한 거룩한 상상력이기에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 아주 현실적입니다. 이미 세상에서 일곱 우렛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