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9:6

조회 수 1326 추천 수 0 2024.01.31 08:48:20

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26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요한은 다시 천상의 합창 소리를 듣습니다. 그 내용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할렐루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찬양의 이유이며 근거입니다. 그의 통치가 전능하다는 말은 세상의 어떤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지배받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입니다. 전능하신 이의 통치를 우리가 기도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결해주시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해할만한 문장이 성경에 나오기는 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 병행구인 마 17:20절은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편이니까 믿음만 있으면 모든 일이 잘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조폭 두목의 막냇동생이 형을 믿고 동네에서 큰소리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통치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선하시고 정의로우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사실을 안다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전혀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이혼했다고 합시다. 걱정이 많겠지만 이혼이 그에게 오히려 유익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한 부부가 있다고 합시다. 그것도 그들에게 선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기만 하다면 자기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선하고 의롭기에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분이라고 찬양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분 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을 너무 관념적이라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합니다. 지금 당장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은 무조건 그런 환경이 좋아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히브리서 기자에 따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은 희망과 현실을 이어주는, 그리고 불가시적인 것과 확신을 이어주는 삶의 태도입니다. 비유적으로 여기 큰 수술을 앞둔 환자가 있다고 합시다. 수술 자체만 생각한다면 당장은 걱정이 태산이지만 의사와 의술을 믿는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믿음으로 손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쉽지 않겠으나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이 어려운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쪽으로 매진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묻혔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레벨:11]소유와존재

2024.01.31 10:23:18

"우리 모두의 미래는 ‘죽은 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다 죽은 자가 될 것입니다. 율법의 실천, 학문적인 업적, 정치적인 치적이 다 죽은 자가 됩니다. "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내가 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죽음의 순간이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든 나는 나로 연결되어 있다.

죽음의 순간에 그러니까 숨 쉬기를 멈추는 그 순간에 기억되어질 나로 지금 살아보면 어떨까?

어찌됐든 연결되어 있으니까 미리 그 때를 당겨서 살아 버리는 거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 순간이 숨을 쉬는 존재로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찰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4.01.31 20:25:31

'미리 그 때를 당겨서' 사는 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죠.

매일 먹고 마시고 사람 만나고 희로애락에 휩싸여 있기에

그런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이 힘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소유존재 님이 방향을 정확하게 잡았으니까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삶에 가까워지겠지요.

[레벨:18]부스러기은혜

2024.01.31 22:14:53

죽음의 순간을 미리 당겨서 산다
그 순간이 그 분과 가장 가까운 찰나일 것이기에...

종말론적인 세계관은
믿는다 자처하는 우리가 오늘 붙들고 살아야할
리얼리티이어야 함을 머리로는 동의하면서도
우리의 실존은 언제나 화급하고,
넋이 빠지게 할만큼 역동적이다보니
과연 이 긴장을 견지해간다는게 우리에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우리 어깨를 늘 짓누르는 실존의 무게와
그것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는 성경이 요구하는 긴장!

우리 실력으로 이 두가지의 병립이 가능한 일일까요?
그분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는
성경의 엄중한 요구를 너나 없이 알고 있으면서도,
우린 얼마든지 두마리 토끼를 잘도 몰아갈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와 함께

두마리 토끼몰이에 대해 서로에게 격려와 응원의 시선까지 보내주며 살아가겠죠?
정목사님이 그런 비유를 가끔 하시잖아요
막장 드라마 시청에 빠져 살면서 신학책 묵상을 겸해서 할수 없다고요
그런데 우린 거뜬히 잘해내고 있으니
그 출중한 처세술로 세상과 그 분을 용케도 겸하여 섬겨내며
흑도 아니요 백도 아닌 정체성으로
어줍잖은 인식의 동굴안에 스스로를 가둔채
평생 내가 만든 신을 믿고 있는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군요


누가 그러더군요.

안믿는것 보다 무서운건 잘못 믿는 것이고

잘못 믿는 것보다 더 무서운건

자기가 잘못 믿고 있으면서 평생 의심 한번 않고 믿는 것이라고요.

우린 어디쯤에 있을까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4.02.02 21:17:07

부스러기 님의 대글이 얼마나 쏙쏙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지 놀라운 지경이네요.

많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실존이 영상처럼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흩어졌던 생각들이 정리되어서 거룩한 영으로 충만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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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구원(2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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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4-27 나는 앞에서 동성애 문제가 성경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약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본문은 롬 1:24-27이다. 사실 바울의 편지에 나온다고 해서 모든 게 옳은 건 아니다. 당시에는 옳았을지 몰라도 오늘까지 다 옳은 건 아니다. 그는 가능한 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게 낫다고 권면했다. 다만 정욕으로 견딜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했다. 여성들은 교회에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도 말했다. 한국의 어떤 교단에서는 여성을 목사로 세우지 않은 이유를 바울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바울의 ...

교회 구원(2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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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절대화하는 건 옳지 않다.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도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모세오경에는 먹어도 될 짐승과 먹지 말아야 할 짐승이 나온다. 예를 들어서 돼지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문자주의적인 축자영감설에 기울어진 목사들도 돼지...

교회 구원(2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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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죄 문제 한국교회에 <이단 사이비 대책위원회> 비슷한 기구가 있듯이 <동성애 문제 조사 위원회>가 조직되어 내가 한 분과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가정하겠다. 여러 분과가 필요할 것이다. 의학 분과, 인류 역사 분과, 유럽 및 북미 교회 분과, 신학 분과 등등이다. 각각의 분과 별로 전문가들이 모여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다음에 전체로 모여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최소한 2-3년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나는 신학 분과에서 활동할 것이다. 동성애를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다. 신학 분과도 성서신학...

교회 구원(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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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구원(20) [2]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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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한국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하자. 다음 단계로는 대규모로 광장에 모여 보여주기식의 ‘큰 기도회’가 아니라 골방에서의 작은 기도회가 필요했다. 각 교단 총회장과 대표 감독을 비롯한 임원단들이 ‘티 내지 말고’ 일주일 금식기도회라도 열었어야만 했다. 지도자들이 기도의 모범을 보이면 개별 교회에서도 신자들이 이 문제로 기도회를 열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달라고,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이 바른...

교회 구원(1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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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교 교수들의 임면권은 일반적으로 이사회에 있다. 이는 일반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신학대학교 이사회는 주로 대형교회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학대학교 교수가 이사회에 의해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찍히면 교수직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 사례가 최근까지 일어났다. 수년 전 장로회 통합 교단은 동성애 문제로 신학자의 신학을 검증하는 위원회까지 설치했고, 최근에 서울 신학대학교는 진화론 문제로 박 아무개 교수를 면직했다. 신학자들도 가장이고 생활인이기에 교수직을 박탈당하는 걸 두려워할 수밖에...

교회 구원(18) [2]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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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집회를 이끈 분들의 진정성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실제로 동성혼 합법화로 인해서 교회와 가정과 대한민국이 무너진다고 확신하는 분들이다. 이런 확신이 오히려 위험하다. 자칫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기 마녀사냥이 그랬고, 히틀러의 나치즘이 그랬다. 극단적인 확신은 종종 광기로 변한다. 이번 ‘200만 한국교회’ 예배 모임을 통해서 차별금지법을 막아내려 한 한국교회 모습은 그 집회 한 달쯤 후인 2024년 12월 3일 야밤에 선포된 비상계엄과 비슷하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실...

교회 구원(17) [2]

  •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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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회 과정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기도 하고 놀란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 집회에 평소 그리스도교 내외에서 존경받던 목사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한국교회가 그나마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잃었던 점수를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름이 나에게 익숙한 이들만 보면 오정현 목사, 이찬수 목사, 유기성 목사, 이재훈 목사, 박한수 목사, 김양재 목사, 조정민 목사 등등이다. 이미 1년 전에 ‘차별금지법 반대 1인 시위’에 나선 목사들도 많다. 나는 이분들의 그리스도교 ...

교회 구원(16) [2]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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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아래는 이 집회가 열린 주일을 지난 다음 주일 예배 때 행한 내 설교의 한 대목이다. 당시의 내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려고 여기 인용한다. 일주일 전인 10월27일 오후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28일 자로 공식 블로그에 인사말이 올라왔습니다. 그 인사말 마지막 단락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이번 연합예배의 가장 강력한 중심에는 회개가 있었습니다. 회개와 성찰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

교회 구원(15) [2]

  •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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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교회가 제자의 길을 제대로 걷는지에 관한 하나의 일반적인 대답을 찾기는 어렵다. 교회 사이에 차이도 크다. 세상에서 빛으로 드러나는 교회도 있고, 빛을 가리키는 교회도 있다. 다만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다면 전체적으로 제자의 길을 가지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설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개신교회가 불교나 로마가톨릭 교회보다 턱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불교와 가톨릭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50%라고 한다면 개신교회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20%도 채 못...

교회 구원(14) [2]

  • 2025-01-18
  • 조회 수 785

제자들은 부활 경험 이후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예수의 제자도(弟子道)에서, 즉 ‘제자의 길’에서 찾았다. 당연하다.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 안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생명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영혼을 온전히 기울이듯이 말이다. 교회는 바로 제자도에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모임인 셈이다. 우리 글쓰기의 전체 주제와 연관해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제자도가 실현되거나 거기에 가까이 갈 때 교회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거꾸로 제자도가 유명무실해지거나 거기...

교회 구원(13) [2]

  • 2025-01-17
  • 조회 수 615

혹시 이렇게 의심을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예수는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으나 예수를 향한 제자들의 그리움이 그런 환영을 불러일으킨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냐, 하고 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소문은 많았다. 빈 무덤 전승에는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빼돌리고 부활했다고 떠벌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의 꿈에 그가 나타나고, 그런 심리가 더 강렬해지면 죽은 자가 늘 자기와 함께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긴 하다. 이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

교회 구원(12) [2]

  • 2025-01-16
  • 조회 수 668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간략하게 설명해보겠다. 제자들의 예수 부활 경험은 십자가 처형 삼 일 후에, 아니면 한 달쯤 후에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약성경에도 부활 현현과 그 경험에 관한 일목요연한 시간표는 없다. 유랑 랍비였던 예수와 함께 지내다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의 영혼 안에서 언제부터인가 강력한 스파크와 같은 어떤 영적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와 그에 관한 비유, 그의 여러 설교, 그의 ...

교회 구원(11) [6]

  •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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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도 인생은 한 번이면 충분하지 두세 번 반복이면 지루하지 않겠는가. 신구약 성경에서 시간과 역사는 환원이 아니라 종말을 향한 직진이다. 영원회귀가 아니라 열린 종말을 향한 동력이다. 우리 개인도 앞으로 나아갈 뿐이지 뒷걸음치지 않는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기는 한다. 그들은 실제로 죽은 게 아니다. 일종의 임사체험이다. 임사체험과는 다른 특별한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다시 죽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하나님...

교회 구원(10) [3]

  • 2025-01-13
  • 조회 수 854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 예수의 십자가 처형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로 여성 제자들이 유월절 축제가 낀 안식일이 지난 이른 새벽에 예수 시신이 묻힌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 묘지에 갔다가 예수의 시신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반응이 복음서에 따라서 다르다.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 16:8) 마가복음이 전하는 부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막 16:9절 이하에 나오는 몇몇 보도는 ...

교회 구원(9) [2]

  • 2025-01-11
  • 조회 수 725

제자들과 예수와의 관계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은 예수의 부활을 왜 제자들만 경험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부활의 예수가 제자들이 모인 방에 나타났듯이 산헤드린 공회에 나타났다면,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 광장에 나타났다면 많은 사람이 부활을 경험했을 텐데 말이다. 복음서와 서신이 이에 관해서 자세하게 보도하지 않기에 우리는 당시에 예수 부활과 연관해서 어떤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는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전에 예수와 특별히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부활...

교회 구원(8) [2]

  • 2025-01-10
  • 조회 수 807

예수께서 교회를 설립하지 않았으나 제자들이 교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필연적인 사태에 직면했기에 교회가 역사에 등장했다. 아무도 교회 설립을 의도하지 않았으나 필연의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 필연적인 사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각종 서신에 나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그 하늘나라가, 또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가르침과 운명에서 현실이 되었다는 깨달음이다. 이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간단한 말로 바꾸면 예수에게서 발생한 구원을 제자들이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에...

교회 구원(7) [2]

  •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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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은폐된 하늘나라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만이 아니라 우주론적 차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태양의 나이는 줄잡아 45억 년이다. 빅뱅은 138억 년 전 사건이다. 태양을 도는 행성인 지구는 태양에서 대략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속 30만 킬로미터 속도인 태양 빛은 8분여 후에 지구에 닿는다. 그 태양 빛은 지구의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이다. 이 모든 물리적 현상이 우리가 다 파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말은 곧 태양 에너지를 먹는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 태양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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