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物) 002- 성경

그동안 수많은 성경이 내 손에 들어왔다가 떠났다. 성경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니 당연하다. 우리말 성경, 국한문 혼용 성경, 영어 성경, 독일어 성경, 헬라어 성경 등등이 있고, 여러 번역본이 있었다. 내가 돈 내고 산 성경도 있고, 선물로 받은 성경도 있다. 위 성경은 목사 안수 기념으로 받은 성경이라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내지에 보니 1980년 3월6일 자로 서울동지방회에서 받은 성경이다. 순식간에 세월이 흘러 이제 곧 42년이 된다.

국한문 혼용 「개역」이라서 지금 사용하는 「개역개정」과는 다르다. 1964년 초판 발행되었고, 1979년에 33판으로 발행된 성경이다. 글자 폰트가 작아서 요즘은 안경 없이 맨눈으로는 읽을 수가 없다. 종이 색깔이 바랬다. 종이의 질은 좋아 보인다. 손에 전달되는 촉감이 여전히 부드럽고 윤기가 난다. 코를 대니 옅은 곰팡내가 난다. 저 한 권의 성경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했을지 상상이 간다. 인쇄 공장의 인부들, 번역자들, 사본에 관계된 이들, 성경을 전승한 초기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저 성경을 기념 선물로 준비한 동지방회 담당자들, 그들 모두가 고마운 이들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저 한 권의 성경에는 그 흔적조차 알 수 없는 나무의 희생이 들어있다. 그 모든 과정이 신비롭다. 오늘도 “나는 성경을 읽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