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01
18: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5절이 말하는 ‘그의 죄’는 로마 체제의 우상숭배를 가리킵니다. 우상숭배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앞 3절에서 확인했듯이 사치와 치부 중심의 삶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는 말은 로마 제국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압축하면 생명 충만입니다. 죽임이 아니라 살림입니다. 로마의 사치와 치부는 두 가지 점에서 생명을 억압하고 파괴합니다. 첫째, 사치와 치부로는 사람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만족할 수 없는 대상에 매달리는 사람의 생명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막아보려고 더 매달리게 됩니다. 악순환에 떨어지는 거지요. 둘째, 한쪽의 사치와 치부는 다른 한쪽의 궁핍과 가난을 초래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과 가장 부한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지 부한 나라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그럴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죄가 하늘에 사무친다는 표현과 같은 뜻이겠지요. 사람은 그 불의한 일이 없었다고 속이려 들겠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4장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나옵니다. 그냥 살인이 아니라 존속살해입니다. 질투심으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때려죽였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시치미를 뗍니다. 여호와의 준엄한 말씀이 들립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말을 다른 쪽으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 하는 것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해도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의 운명에 흔적으로 남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젊었을 때는 정신이나 육체 건강에서 차이가 크지 않으나 늙으면 벌어집니다. 일란성 쌍둥이가 헤어졌다가 60년 후에 만난 일이 있습니다. 쌍둥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60년 동안 살아온 과정이 그 이유입니다. 삶의 매 순간을 우리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살아야겠지요. 조심스러우면서도 담대하게, 불안하지만 평안하게 살아야겠지요. 수행하듯이!
한쪽의 사치와 치부는 다른 한쪽의 궁핍과 가난을 초래합니다.
정부에서 청년도약계좌 라는 것을 만든다는데 일정액수를 정기적으로 저축을 하면 정부에서 일정액을 더하여 목돈을 만들어준다는 제도입니다. 신문기사만 보고 너무 좋은 제도인것 같아서 딸들에게 한구좌씩 들으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자격이 안된답니다. 자기 주변에 자격이 되는 친구들은 한명도 없답니다. 한달 월급 일정 액수를 받는 직장이 있어야 되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 자격자라면 굳이 청년도약계좌에 안들어도 될사람들만 자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정작 필요한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 이땅의 청년들의 한숨이 하늘에 사무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