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06
18: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이들의 일부가 ‘화 있도다.’라고 외칩니다.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리스어 οὐαὶ(우와이)의 번역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눅 6:24-26절에 네 번 나옵니다. 그중에 2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누가복음이 말하는 이 화는 복과 대칭되는 개념입니다. 눅 6:20-23절에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이 네 번 나옵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아마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이 떠오를 겁니다. 마태복음은 여덟 가지 복만 말하고, 누가복음은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를 말합니다.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은 마태나 누가나 똑같이 그리스어 Μακάριοι(마카리오이)의 번역입니다. 마카리오이는 ‘복이 내리기를 바란다.’라는 기원이기도 하고 ‘복이 있으리라.’라는 예상이기도 합니다.
계 18:10절이 말하는 화는 ‘심판이 이른 것’입니다. ‘한 시간에’ 심판이 온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아주 신속하게 심판이 온다는 뜻이겠지요.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로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재앙 같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람도 실제로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할만한 표현이 앞에서도 많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서 계 16:17-21절에 따르면 큰 지진이 일어나서 섬과 산악이 없어지고, 돌덩이 같은 우박이 떨어지는 재앙이 열거됩니다. 이런 표현이 수없이 나옵니다. 재앙의 표본은 출애굽 당시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입니다.
이런 표현을 문자적으로만 읽으면 곤란합니다.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압도적인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제국으로부터 해방하신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그런 참혹한 방식으로 심판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발생한 쓰나미나 각종 자연재해를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죄를 많이 지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심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게 성경 읽기에서 어려움입니다. 성경 텍스트의 깊이로 들어가지 않으면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할 수 있으니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재앙이라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하나님 부재요, 하나님 침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인생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