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10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심판이 이어집니다.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떠났다는 표현이 아주 강렬하게 들립니다. 영혼이 탐한다는 말은 도박하듯이 자기의 존재 근거를 다 거는 차원에서 매달리는 어떤 사태를 가리킵니다. 자신의 운명을 투영한 것으로 보이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기억납니다.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합니다. 젊음을 회복하는 대신에 영혼을 그의 손에 넘깁니다. 자기 영혼을 걸고 거래하고 싶을 정도로 젊음이 매력적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고 늙어버리는 파우스트가 지옥에 떨어져야 할 순간에 그레트헨이라는 여성 덕분에 구원받기는 합니다. 괴테가 그 소설을 평생에 걸쳐서 완성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지 인간은 허무에 떨어지든지 아니면 자기 영혼을 포기하면서도 어딘가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입니다. 정 안 되면 알코올이나 마약에서 빠져들기도 하잖아요. 그게 바로 위 구절이 말하는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가리는 거겠지요.
요한은 과일과 맛있는 것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고급의 먹을거리가 동이 났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런 먹고 마시고 즐기는 방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요즘 소위 ‘먹방’(먹는 방송?) 유튜브가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듯합니다. 맛집을 찾아가는 장면도 나오고, 폭식 장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유튜브 방송을 위해서 여러 이벤트를 벌이는 겁니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 이런 종류의 축제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으면 좋지요. 문제는 이런 문화가 종종 식이장애를 일으킨다는 데에 있습니다. 순전히 먹는 쾌감에 탐닉하는 거지요. 외부의 이런 자극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단계까지 빠져듭니다. 거꾸로 거식증에 걸리기도 하고요.
요즘 20대와 30대의 평균 수명이 그들의 부모 세대, 즉 60대와 70대의 평균 수명보다 줄어드는 조짐이 나타났다는 어느 의학 전문가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가 바로 먹을거리에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 먹던 음식과 오늘 자녀 세대가 먹는 음식이 미래의 건강을 각각 다르게 결정한다는 겁니다. 그 전문가가 말하는 가장 좋은 식단은 우리의 70-80년대의 가정집 밥상입니다. 잡곡밥, 김치, 된장국 정도가 일반적인 식단이었습니다. 육식은 아주 가끔 나왔고요. 지금 젊은이들은 치킨과 맥도널드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런 먹을거리가 축적되면서 결국에는 건강이 나빠지고 평균 수명도 짧아진다는 겁니다. 건강 수명 자체가 파멸적인 상태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